매년 듣는 똑 같은 말, 귀향 꺼린다

상대방의 방어본능 촉발, 배려 필요

“회사에 취직했니? 아직 취직이 안됐으면 부모님 걱정이 많으시겠네.”

“이제 나이도 찼는데 올해는 꼭 결혼 해야지.”

설을 맞아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취업이 결정되지 않았거나 결혼 적령기를 넘겼지만 애인이 없는 사람이라면

친지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게 마련. 이런 혀를 차는 소리가 듣기 싫어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 소개팅 전문업체의 조사에 의하면 30대 이상 미혼 여성의 58%는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질문으로 결혼 계획을 꼽았다. 또한 한 온라인 취업정보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구직자의 73%가 명절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직장인은 연봉 문제를, 학생들은 성적에 관한 질문을 가장 듣기 싫어했고 특히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은 대학 진학에 관한 이야기를 부담스럽게 느꼈다.

명절에 듣는 말로 인한 스트레스는 친밀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친구이거나 서먹한

사이에서는 오히려 서로의 기분을 배려해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할 말을 하지 않으려

의식하지만, 친지는 남이 아닌 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게다가 명절이면 가족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게 돼 말 한 마디에도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깊은 응어리가 생기고 집안의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은 “옛 집단사회에서는 가깝다고 생각하면 남의 생활에

침투해도 된다는 의식이 있어 남과 나의 경계가 불분명했다”며 “현대사회는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므로 잔소리가 상대방의

방어본능을 촉발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상대에게 부담이 될 만한 이야기를 반복해 묻는

까닭에 대해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인사치레나 자기과시, 관심의 표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척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새해를 함께 맞이하는 설날,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는 것을 기피하거나 부담스러운 말을 늘어놓는 대신 서로에 대한

약간의 배려가 필요한 시기다.

    유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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