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해결책 없이 논쟁만 지속

“사회적 합의 필요” vs. “지금껏 뭐 했나”

낙태 근절을 선언한 한 산부인과 의사 모임이 낙태수술을 한 동료의사를 최근

검찰에 고발하는 등 실력행사를 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낙태근절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대안마련 움직임보다는 논쟁만 지속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낙태 근절은 중장기 과제로 논의돼 온 문제인데 한 의사

단체의 주장으로 갑자기 정책을 바꿀 수는 없다”며 애써 무표정한 상태다. 논쟁을

촉발한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는 서둘러 낙태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일에는 대한 산부인과의사회도 성명서를 내 “인공임신중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의사 고발, 의사 처벌 강화 등 강제적인 수단은 지속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지 않으며

성교육, 피임홍보 등 장기적 관점의 교육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최근 행보를 비판한 것.

▶프로라이프 “정부는 임신부 사회적 지원책 마련하라”

동료의사를 고발한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주장은 단호하다.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아이를 낳기 힘든 임신부의 임신중절에 대해 정부가 사회적 지원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

프로라이프 의사회 심상덕 윤리위원장은 “한국 낙태 문제의 심각성은 1995년과

2005년도에도 어마어마한 수치로 제시됐는데 정부가 이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신부들이 직접 낙태를 선택, 장애아,

미혼모 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해결했기 때문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사실상 게을리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심 위원장은 “낙태 자체나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비교적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책이라도 정부가 당장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낙태해결, 미혼모 지원은 중장기 과제”

복지부는 임신중절을 방지하기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2007년부터 진행하고 있고

여성단체, 시민단체 등 각계가 낙태문제를 논의하는 ‘생명포럼’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미혼모 지원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의 한 요소로 포함돼 있다는

주장.

보건복지가족부 가족건강과 관계자는 “낙태문제 해결이나 미혼모 지원 등은 원래부터

중장기 과제”라며 “복지부 혼자만이 아닌 각 분야 합의를 바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관계없이 새 정책을 추진하기 보다는 하던 바를 유지하겠다는

입장.

▶산부인과 “의사가 이슈의 중심 아니다”

낙태에 대한 고발이 처음으로 이뤄지자 상당수 산부인과는 낙태시술을 중단하고

있다. 하지만 낙태는 하려고만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다는 점에서

고발이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보건당국의 관계자는 “낙태를 해야 하는데 할 수 없어 크게 어려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안다”며 “정부가 강경한 조치를 하더라도 하겠다는 사람은 낙태가

합법인 일본으로 원정낙태를 하거나 음성화된 경로를 통해 수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낙태 자체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 이전에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실력행사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대한 산부인과의사회 장석일 부회장은 “낙태는

생명존중 사상과 같은 종교적 가치와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등 다른 큰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라며 “의사는 낙태문제의 최종점에 서 있는 행위자일 뿐 이슈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김혜민 기자 haemi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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