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논란, 할머니의 별세 그 후

존엄사, 사회적 합의는 어디쯤 가나

지난해 5월 대법원의 국내 첫 ‘존엄사 허용’ 판례의 주인공이 되었던 김 모(78)

할머니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최고 법원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도 된다’는 판결에

따라 연명치료의 한가지인 인공호흡기를 떼냈지만 김 할머니는 자력 호흡으로 6개월여를

더 생존했다.

우리 사회의 ‘존엄사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며 한참 더 설왕설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과 연세대병원 등은 ‘연명치료’에 관한 자체 지침서를 만들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를 제도화하기 위한 원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존엄사에 관한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할머니가 생전에 치료받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박창일 의료원장은 10일 “연명치료중단이라면

영양 및 수분공급 항생제치료 등을 모두 중단하는 것인데 이 분은 인공 호흡기만

뗐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무의미한 생명연장’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합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김 할머니의

사후, 우리 사회의 ‘존엄사’를 둘러싼 논란이 풀어야 할 과제를 정리한다.

▽연명치료 중단범위는 어디까지?

의료계 내부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을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만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견과 영양 및 수액 공급과 항생제 치료까지 중단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표출돼 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만 중단 범위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영양 및 수액 공급도 대상에 넣자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도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만 중단했다. 영양 및 수액 공급은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에 병원 측이 “연명치료를 전면 중단했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설령, 환자가 “삶을 무의미하게 연장하지 말라”는 의사 표명을 미리 했더라도

마찬가지며, 환자 가족이 여러 이유로 원한다고 해도 연명치료 중단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사회적 합의가 돼야 할 부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와 관련한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영양 및 수액 공급과 통증조절 등 기본 의료 행위 유지 △환자가 사전에 구체적으로

심폐 소생술 및 인공호흡기를 거부했을 경우 중단 가능 △환자는 사전에 자기 뜻을

피력할 수 있고,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가치관을 고려한다는 내용이다.

▽연명치료 중단은 누가 결정할 수 있나?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해 아무런 뜻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연명치료가 이뤄질 경우 가족이 중단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는지도 고민이다. 환자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가족이 환자에게

알리길 꺼려 하는 한국인의 정서도 이 고민을 가속화한다.

학술지 ‘암에 대한 지원 치료(Supportive Care in Cancer)’ 온라인 판에 지난해

4월 논문을 낸 국립암센터 윤영호 박사에 따르면 환자 본인의 존엄사 요구로 연명치료를

중단한 경우는 단 3.7%였다. 윤 박사는 “환자 본인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경제적 이유로 노부모 치료를 포기하는 등 악용될 소지가 있어 혼란을 막으려면

말기 환자에 대한 임종 관리 및 의료 윤리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존엄사법, 필요한 걸까?

세상을 떠난 김 할머니의 가족은 당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법률이 있어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환자

스스로 중단할 권리가 있다 해도 국가가 반드시 법제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각하결정을 한 바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도 사회적 합의가 먼저 있은 뒤에 존엄사법 제정이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법제정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경제적인

이유로 생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어 사회적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국회에는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의 ‘존엄사 법안’과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의료계는 연명치료 중단을 위해서는 법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 서울대병원

등 관련 가이드라인을 자체 마련한 대형병원도 시행은 못하고 있다.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자체 판단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불법이기 때문. 허대석 교수는 “판단

기준이 사람마다 의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법적으로 한계를 명문화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박양명 기자 toan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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