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리더십 세상 품는다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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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고무하라’ 칭찬은 죽은 자도 일으켜

따뜻한 감독은 선수들을 수시로 ‘찬양’하고 ‘고무’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우울증환자도 덩실덩실 춤추게 만든다. 그뿐 아니라 그런 감독들은 선수가 기대에 좀 못 미치더라도 진득하게 기다려준다. 속이 썩고 또 썩어도 꾸욱~ 참고 믿음을 보낸다.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 가슴에 상처받을 말은 절대 안한다. 꼭 싫은 말을 해야 될 때조차 “사람이 던지는 공인데 그걸 못쳐”하는 식으로 빙 돌려서 말한다. 그는 선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회를 주고 끈질기게 기다린다. 감독이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언젠가 그 기대에 꼭 보답한다고 믿는다.

그는 작전을 잘 내지 않는다. 작전 없는 작전이야말로 최고의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볼카운트 노 스트라이크 스리볼이나 원 스트라이크 스리볼일 때도 타자에게 마음껏 치라고 한다. 그 상황에서 작전을 걸면 타자는 나쁜 볼에도 할 수 없이 방망이가 나가야 되는데 그건 감독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은 편안하게 쳐야 잘 맞는다고 굳게 믿는다.

김 감독은 1991년 8월 14일 쌍방울 시절 9번 연속 패전에 허덕이고 있던 고졸신인 김원형 투수(현 SK)를 광주 해태전에서 또 선발로 내보냈다. 상대는 당대 최고투수인 해태 선동렬. 감격한 김원형은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던졌다. 결과는 9이닝 2안타 10탈삼진으로 1-0승리.

“그 생각만하면 지금도 짜릿하다. 어떻게 하든 그 친구를 쌍방울 기둥투수로 만들고 싶었다. 기대대로 김원형은 그 이후부터 펄펄 날았다.” 

9연속 패배의 투수를 믿고 또 선발로 내보내는 감독. 이에 죽을힘을 다해 보답한 선수. 믿음은 죽은 자도 벌떡 일어나 춤추게 한다. 올 시즌 초반 한화는 5연속 연거푸 패배를 당했다. 그런데도 김인식 감독은 태연했다. “이럴 때는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는 수밖에 없어. 감독이 승패에 일희일비하면서 야단치고 안절부절 못하면 선수들은 주눅이 들어”라고 조용히 되뇌일 뿐이었다.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락커룸

칭찬과 믿음이라면 로이스터 롯데 감독도 못 말린다. 그는 맨 날 꼴찌에서 헤매던 ’꼴데‘ 롯데를 올 시즌 일약 상위권에 오르내리도록 만들었다. 2000년 이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적이 없어, 봄에만 반짝한다는 ‘봄데’ 롯데를 강팀으로 바꿔 놨다. 그는 경기 전 선수들과 미팅할 때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하고 인사한다. 그는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그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감독들이 너무 경기를 좌지우지(manufacturing) 하는 한국야구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올 시즌 롯데 라커룸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친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고 경기의 주인공은 선수다. 난 선수들에게 ‘좋은 공이면 초구부터 마음껏 휘두르라. 프로선수라면 타점을 올려야 돈을 번다. 돈을 벌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았다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 상대에게 약하게 보인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무조건 1루로 뛰어나가야 한다. 한국선수들은 대부분 트레이너가 달려 나와 스프레이를 뿌려줘야 일어서서 부축을 받고 나간다.”

로이스터는 삼진을 당하고 들어와도 “상대 투수를 괴롭혔다”며 박수를 쳐준다. 삼진 당했다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덕 아웃에 들어오면 오히려 “당당하게 어깨를 펴라”며 등을 두드려준다. 로이스터는 끊임없이 선수들을 자극한다. ‘그냥 서서 삼진 당하지 말고 방망이를 맘껏 휘둘러라’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이라도 볼을 고르려 하지마라’ ‘3, 4, 5번 타자는 스리 볼 노 스트라이크에서도 쳐라. 볼 고르라고 그 자리에 둔 것이 아니다’

로이스터는 번트를 실패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말한다. 투수를 교체할 땐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 등을 토닥여주며 애썼다고 말해준다. 서정환 전 기아타이거즈 감독은 “난 5년간 감독생활을 하면서 투수교체 때 단 한번도 마운드에 직접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대부분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간다.

지난 4월 13일 KIA전 땐 투수 강영식이 무사 1루에 몰리며 당황해 하자 마운드에 직접 성큼성큼 올라가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하면 된다(Just do it what you do)"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그 후 강영식 나머지 3타자를 삼진-내야플라이-내야땅볼로 처리했다.

10만 관중 속 친구 찾는 2% 여유 있어야

그는 선수를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1군 선수들은 거의 2군에 내려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주전들의 체력 안배에 더 신경 쓴다. 1군과 2군 엔트리를 바꾸는 대신 하루는 포수 강민호 대신 최기문, 또 하루는 유격수 박기혁 대신 이원석을 기용하는 식으로 변화를 준다. 그러면서 틈틈이 선수들을 따로 불러 “너희가 최고다. 진다는 생각을 버려라.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수준 차이는 분명히 있다. 1군에 있는 선수들은 코칭스태프가 뽑은 베스트다. 계속 믿고 기회를 주겠다”며 찬양하고 고무한다.

“난 3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공격적으로 하라(Do aggressive). 둘째 집중력을 높여라(Be focusing). 셋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Don’t be afraid of failure). 한국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실패다. 한국 투수들은 너무 많은 볼넷을 내준다. 수비도 모자란다. 희생번트도 너무 많이 댄다. 희생번트는 점수를 내는 좋은 무기 중의 하나이지만 아웃 카운트 하나를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희생번트는 다음 타자가 안타를 쳐야 성공으로 끝난다.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점수를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들 스스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한다. 난 우리 선수들을 프로로서 존중한다. 한국엔 프로야구팀이 8개밖에 없는데 그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선수라는 뜻이다. 특별한 만큼 선수들을 존중하려고 한다.”

로이스터 감독은 에이스 손민한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한국의 최고 투수일 뿐만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 그레그 매덕스(42·샌디에이고)에 버금간다고 말한다. 매덕스는 6월 1일 현재 통산 350승(218패) 평균 자책점 3.12를 기록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미국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은 떼 놓은 당상일 정도로 컴퓨터 제구력을 자랑하다.

김호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감독도 선수들을 믿고 칭찬해 준다. 그는 최근 K리그 감독 사상 첫 200승 고지에 올랐다. 이팀 저팀 방랑하던 고종수를 품에 안아 꽃을 피우게 한 것도 바로 그였다. 그 어느 감독도 야생마 고종수를 다루지 못했지만, 오직 김 감독만이 그를 훌륭하게 숙성시켜 써먹고 있다.  

“선수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선수의 장점이 표출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이해시키고 대화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경기 당일에는 별 이야기를 안 한다. 감독은 10만 관중이 와도 그 속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승 원동력은 선수 다루는 감독의 인생철학

신치용 프로배구 삼성화재 감독은 ‘훈련독사’다. 그는 “난 선수이름은 믿지 않는다. 믿을 것은 훈련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2007~2008시즌에 확 변했다. 갑자기 시즌 초 “난 이제 너희들 앞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훈련도 A, B그룹으로 나눠 실시했다.

A그룹은 30대 중반 및 주전선수, B그룹에는 신인 및 후보 선수로 구성했다. A그룹은 신감독과 한솥밥 먹은 지 10년이 넘는 선수들로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자율에 맡겼다. 대신 B그룹은 신 감독이 직접 챙겼다. 경기 전 상대 팀 비디오 분석 때도 들어가지 않았다. 선수들끼리 알아서 토론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알아서 감독 있을 때보다 훈련을 더했다. 신감독이 오히려 ‘훈련 좀 그만 해라’고 해도 선수들이 알아서 기를 쓰고 과외훈련을 했다. 그 결과는 달콤한 우승이었다.

“결국 경기도 우승도 사람이 하는 것이더라. 지난 2년간 준우승하면서 결국 배구도 사람이 하는 거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가장 효율적인 지도라는 것을 절감했다. 스포츠에서 최고의 과학은 심리다. 체력이나 분석, 기술적인 면은 누구나 다 안다. 아는 걸 실천하는 건 결국 선수의 몫이다. 늘 열심히 하려고 하는 선수들에게 잔소리 해봤자 역효과만 난다.

결국 운동은 선수들이 했고 나는 약간 도와줬을 뿐이다. 위기 때 그걸 해결하는 것은 선수들이다. 우리 주전선수 모두는 애 아버지들이다. 세상을 알만한 나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전과 같이 무작정 내가 앞서 끌고 갈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힌트를 던져주고 해결책은 알아서 찾으라고 했던 것이다. 정말 올 시즌을 치르면서 배구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그렇다고 주전급 7명 외의 젊은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자율훈련을 하라고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강한 훈련을 시켜 전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한다.”

시즌 초 배구 전문가들은 삼성화재를 단연 꼴찌후보로 꼽았다. 신진식, 방지섭, 김상우 같은 베테랑들이 은퇴한데다 외국인선수 안젤코를 뺀 주전들의 평균 나이가 31.4세나 됐기 때문이다. 그런 노장들로 과연 7라운드까지 벌이는 장기레이스에 버틸 수나 있을지 모두들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거꾸로 그 사실을 선수들 자극하는 충격요법으로 썼다. 선수들에게 “우리 팀이 꼴찌후보란다. 삼성은 김세진, 신진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팀인가 보다”라며 틈만 나면 선수들 자존심을 긁어댔다. 선수들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 이를 악물었다.

무한한 신뢰, 형 같은 자상함, 자율관리 ‘리더십 새 지평’

로이스터 감독도 선수들 자율을 최대한 존중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야구를 하도록 북돋운다. 훈련도 짧다. 죽어라 시켜서 하는 훈련이 아니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야구는 즐기는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즐길 줄 알아야 멋진 플레이가 나온다고 믿는다. 마해영은 말한다.  

 “우리 감독님의 야구는 스스로 야구가 쑥쑥 느는 야구다. 가르쳐서 잘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투수와 싸우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는 야구이다. 작전이 많아지면 수동적이 되고 자신의 능력보다는 감도 지시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너희 스스로 알아서 싸우라고 하게 되면 자신이 알아서 상대 투수의 상태를 판단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야구가 자꾸 는다. 감독님은 늘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조성준 남자하키 감독도 형 같은 감독이다. 그는 지방 전지훈련 땐 승합차를 빌려 직접 운전기사 노릇까지 한다. 여태까지 한국 남자하키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 이후 눈에 띄게 하향세를 보이더니,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는 8위로 미끄럼을 탔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역 하키’가 문제였다.

조 감독은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견을 듣는다. 상대 경기비디오를 보면서도 선수들과 토론으로 그 대비책을 마련한다. 한국 남자하키는 이제 세계 4강권에 들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더니, 지난해 5년 만에 세계 6강이 겨루는 챔피언스 트로피 대회에 나가 당당히 4위를 차지했다. 당시 세계 1위 호주를 1-0으로, 세계 3위 네덜란드를 6-2로 이기기도 했다. 어쩌면 8월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형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조 감독은 말한다.

“이제 강압적인 외부 자극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경기력을 질적으로 높이려면 선수들 스스로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해야 한다.”

김성근 SK 감독은 관리야구로 유명하다. 그가 요즘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 난 특별히 하는 게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경기 전 선수들의 훈련 때도 김 감독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즌 개막 후 연패에 빠졌을 때, 선수 하나하나 살펴보며 ‘관리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관리야구에서 믿음 자율의 야구로 바뀌고 있는 낌새다. 물론 팀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예전의 관리야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작은 변화도 김 감독을 아는 사람들에겐 대단한 변화인 것은 틀림없다. 그는 작전을 많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요즘 보면 예전에 비해 작전 내는 빈도수가 확 줄었다. 지난해 우승 이후 피도 눈물도 없던 그에게 2%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난 요즘 작전을 지시한 적이 별로 없다. 선수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어떨 땐 ‘아! 이제 됐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관리라는 것이 전면에 나서서 해야 할 때가 있고 뒤에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때가 있다.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 데는 리더의 역할이 절대적이고 이를 유지하는 것은 참모들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은 참모들이 조직을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큰 흐름만 짚어주고 지켜보는 것이다.”

<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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