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무역에 쓰였던 쾌속 범선 '커티샥', 그 이름이 세계적 브랜드가 된 이유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19. 영국의 범선 커티샥(Cutty Sark)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범선 커티샥, 커티샥에 대한 책, 위스키 커티샥, 커티샥 선두의 내니 조각상. [사진=유영현 제공]
‘커티샥’(Cutty Sark)은 원래 범선(帆船) 이름이었다. 1869년 진수되었고 1954년 수명이 다하여 항해를 중단하였다. 이후 런던 그리니치 자치구의 강가에 영구 정박되어 박물관 겸 테마 카페로 전시되고 있다.

커티샥은 클리퍼(clipper)다. 속도를 최우선으로 건조된 범선을 클리퍼라 한다. 클리퍼들은 속도 경쟁을 벌였다. 특히 당시 중국에서 차를 운반하던 클리퍼들은 봄에 갓 제작된 차를 영국까지 먼저 운반하는 경쟁을 벌였다.

이른 봄에 중국에서 채엽된 작은 찻잎을 이른 시간에 런던에 운반하는 경쟁은 치열하였다. 중국의 푸저우, 광저우, 상하이에서 출발한 차는 약 2만 6000km를 항해한 뒤 런던에 도착하였다. 보통의 클리퍼선으로 약 100일 소요되는 레이스였다.

이들이 런던의 템즈강을 따라 올라오면 런던 시내는 소문이 즉시 퍼지고, 강 옆에 늘어선 영국인들은 열광하였다. 그해 가장 먼저 도착한 차는 접대용으로 선물 되고 귀하게 취급되었다.

중국 차를 먼저 들여오기 위해 벌어지던, 범선들의 치열한 속도 경쟁 '티 레이스'

1866년의 ‘티 레이스’(tea race)는 가장 치열하였다. 40여 척이 티 레이스에 참여하였으나. 푸저우항을 동시에 출발한 3척의 배가 실질적인 우승 경쟁자들이었다. 경쟁이 시작되고 99일 만에 애리얼호가 가장 먼저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조수 차이로 배를 정박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 뒤따르던 태핑호가 20분 먼저 정박하였다. 패팅호가 우승하였다. 세리카호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도착하였다. 3척 모두 같은 조류를 타고 출발하고 같은 조류를 타고 도착하였다는 뜻이다.

이 치열한 레이스의 우승자에게는 보너스를 주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주들은 보너스를 나누기로 비밀리에 합의하여 99일간의 사투를 가치 없게 만들었다.

커티샥은 티 레이스가 절정일 때 우승을 목표로 건조된 클리퍼였다. 1869년 진수되었다. 건조될 때 유럽 전역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커티샥이 항해를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클리퍼는 가치를 잃었다. 증기기관이 배의 추진에 활용되면서 범선보다 날씬하고 더 빨리 항해하는 증기선이 선호되기 시작하였다.

더군다나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증기선이 수에즈 운하를 자유롭게 통과하게 되자 중국과 영국 간의 항해 시간이 현저히 축소되고 차도 더 빨리 배달되었다.

수에즈 운하, 증기선 등장으로 클리퍼 범선 시대는 저물고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여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항해하여야 하는 범선들이 벌이는 티 레이스는 그해의 첫차를 배달한다는 의미를 잃어버려, 범선들 경쟁이 흥미로울 리가 없었다.

커티샥은 클리퍼 시대의 마지막 범선이 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래도 커티샥은 티 레이스 역사에 작은 업적을 남긴다. 티 레이스 흥미가 많이 떨어진 1872년, 커티샥은 티 레이스에서 준우승한다. 항해 도중 키가 부러져 테르모필레호에게 7일을 뒤져 도착하였고 우승을 놓쳤다. 이후 커티샥은 차와 무관한 일반 상선으로 항해한다.

티 레이스에서 큰 기록을 남기지 못한 커티샥은 특별한 항해일지로 인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1880년, 16살의 챨스 상케라는 선원이 커티샥에 오른다. 영국 웨일즈의 카디프에서 출발할 때 가까스로 커티샥에 올라탈 때 만 하여도 상케는 그 항해의 재앙 같은 미래를 상상도 못 하였다.

커티샥의 선장은 제임스 왈리스였고 일등 항해사는 시드니 스미스였다. 배가 인도네시아의 안제르를 향해 항해하는 동안 스미스와 3명의 흑인 선원 사이에 불화가 자라났다. 그중 한 사람 프란시스는 스미스와 주먹을 교환하며 싸웠으나 이내 소란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몇 주 뒤, 스미스는 프란시스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공격하였고 프란시스는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놀라운 일은 안제르 항구에 도착했을 때 스미스가 사라진 것이다. 선장이 관여된 일이 분명하였다. 선장은 살인을 은폐하려 노력하였으나, 커티샥은 일본의 요코하마로 향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요코하마에서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 것을 우려하였던 왈리스는 몸을 바다에 던진다. 또 하나의 죽음이 이 배에서 발생하였다.

배는 이등 항해사 주도로 안제르로 돌아갔다. 이후 배는 싱가포르로 향하고 이곳에서 새 선장 브루스가 배에 오른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호주 캘커타에서 보낸 후 샹케를 제외한 선원은 거의 호주인으로 교체되었다.

커티샥은 상하이로 떠난다. 상하이에서는 전염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정박하는 동안 선원들은 그곳에서 유행하던 콜레라에 접촉하고 만다.

커티샥은 한 선원의 항해일지로 또 다른 명성을 얻고 

상케를 포함한 몇 명만이 콜레라 감염을 피했고, 감염자들은 상하이 병원에 입원하였다. 상하이 병원에서 두 명의 선원이 죽었다. 심하게 감염된 세 명의 선원도 휴직한다. 이들이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배로 돌아왔을 때 브루스는 잔인하게도 이들을 바로 일에 복귀시켰다. 하지만 선원들은 항의하고, 판사는 이들에게 2주 간의 회복 시간을 허락한다.

상하이에서의 콜레라 소동으로 항해가 지연되어 이들의 목적지는 런던에서 뉴욕으로 바뀐다. 항해 경로가 바뀌자 귀국 일정이 의심스러워진 호주 선원들은 당황한다.

이런 가운데 선장과 일등 항해사는 자신들을 위한 술을 사기 위하여 안제르에 정박하였다. 상황은 악화하고 배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승무원들은 선장과 일등 항해사를 불신하고 선장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배를 샅샅이 뒤져 술을 바다에 부어 버린다.

뉴욕으로 향하며 선장과 일등 항해사는 말을 잘 듣지 않고 임금만 높은 호주 선원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수립한다. 우선 돛에 붙어 있던 밧줄을 놓아 한 명의 호주 선원을 배 밖으로 떨어뜨려 제거하였다. 그리고 뉴욕으로 항해하면서 보급품을 줄여나갔다. 식량에 이어 설탕 그리고 라임 배급량을 줄였다. 기내에 과일과 채소가 없어서 이는 치명적이었다.

보급품은 점차 더 줄었고, 기아(飢餓)가 배를 휩쓸고, 선원들은 절망적으로 되었다. 배에 음식을 공급하는 증기선을 만나지 않았으면 그들은 기아로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배는 뉴욕에 정박하고 샹케는 배를 떠나 가족의 이민지인 캐나다로 떠난다.

샹케가 남긴 항해일지에 등장하는 콜레라 이야기는 콜레라 범유행 중 1881년 유행사건을 담고 있다. 항해일지는 1881년 상하이라는 한정된 곳에서 콜레라에 걸린 커티샥 선원 이야기를 다루었을 뿐이지만, 이는 세계 곳곳에서 유행하며 큰 재앙을 몰고 왔던 콜레라 범(汎)유행 이야기의 일각이다.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콜레라, 중국과 아시아에도 수많은 희생자를

이 범유행으로 유럽과 아시아, 당시 후진국이었던 조선에서까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반면 이 범유행은 서양의학의 도입과 맞물려 검역 시행과 감염 규칙 제정 등 근대적인 보건의료 체제가 수립되는 계기도 되었다.

커티샥이란 이름은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가 그의 시에 나오는 요정 내니가 입고 있던 짧은 셔츠를 묘사하기 위하여 쓴 표현인 ‘짧은(cutty) 셔츠(sark)’에서 비롯되었다. ‘짧은 셔츠’가 범선 커티샥의 이름으로 채택된 이유는, 선박의 소유자가 스코틀랜드의 문화와 전설을 반영하면서 선박의 속도와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커티샥의 뱃머리에 설치된 흰색 조각상 ‘figure head’도 내니이다. 항해를 멈춘 지금도 빠른 속도라는 이미지와 문화적 상징성을 보여 준다고 찬사받고 있다.

이후 커티샥은 유명한 위스키의 이름이 된다. 위스키 이름에 채택된 이유는 “범선 커티샥 선원들의 도전정신을 상징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커티샥이란 이름은 별나게 진화하였다.

이후 커티샥은 여러 노래에서 제목으로 채택되었고, 독일의 헤비메탈 밴드의 이름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남성 의류 브랜드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청소년들이 교류하고 항해 기술을 배우는 국제 요트 레이스대회 이름에도 쓰였다. 짧은 셔츠라는 뜻으로 처음 쓰인 커티샥 이야기는 이처럼 긴 파노라마를 남겼다.

유영현 엘앤더슨병원 진료원장

    유영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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