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못 자다, 사망까지"...파리가 옮기는 치명적 '이 병', 세계 확산 위험?
'수면병'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트리파노소마증...기생충이 감염 매개체인 체체파리에 기생하지 않고도 직접 감염 돌연변이 발견
아프리카에서 치명적인 질병으로 알려진 '수면병(Sleeping Sickness)'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제기됐다. 이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은 체체파리에 기생하면서 병을 옮기는데, 다른 동물과 인간에 직접 감염시키는 돌연변이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수면병'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트리파노소마증(African trypanosomiasis)은 초기 증상으로는 발열, 쇠약감, 가려움증 등이 나타나고, 밤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증상을 유발한다.
초기에는 증상이 경미할 수 있지만, 치료하지 않을 경우 감염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이 질병의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는 수면 패턴의 혼란이다. 그래서 낮 동안 졸음을 느끼고, 밤에는 불면증을 겪는다며 '수면병'이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치료하지 않으면 이 질병은 통제할 수 없는 공격성, 정신병 증상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최근 네이처(Nature) 저널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질병을 유발하는 기생충이 진화하면서 아프리카를 넘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이 기생충들은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 지역의 체체파리를 통해 전파됐다. 체체파리는 인간이나 동물을 물 때 감염을 전파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 키스 매튜스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는 이 기생충이 생활사를 단순화시키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적응은 체체파리(tsetse fly)를 매개체로 삼지 않고도 직접적으로 동물을 감염시킬 가능성도 시사한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진화된 기생충의 변종이 이미 아시아, 남아메리카, 남유럽의 동물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기생충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키스 교수는 “트리파노소마는 체체파리를 배제함으로써 지리적 범위를 확장할 방법을 찾았다”며, “이들에서 나타난 분자적 변화는 치명적인 기생충의 출현을 감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해 사람, 동물, 체체파리에서 수집한 80개 이상의 기생충 샘플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기생충의 '가계도'를 작성하고, 이러한 진화적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유전자에서의 돌연변이를 다수 확인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후 변화와 체체파리 개체수를 통제하려는 인간 개입이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기생충이 원래의 곤충 숙주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공동 저자인 가이 올드리브 박사는 “실시간으로 미래 발생을 예측 탐지할 수 있는 간편한 진단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이 연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면병이 아프리카를 넘어 인간에게 확산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새롭게 밝혀진 유전적 통찰은 질병 추적 및 대처에 있어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체체 파리에 물린 후 가벼운 증상 나타나다가 혼수 상태에 빠질 수도
수면병 또는 아프리카 트리파노소마증은 기생충인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Trypanosoma brucei)'에 의해 발생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나타난다. 이 질병은 체체파리의 물림을 통해 사람과 동물에게 전파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두 가지 주요 아종에 따라 구분된다. 서아프리카형 수면병의 원인인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 감비엔스(T. brucei gambiense)는 만성적으로 진행되며 천천히 증상이 나타난다. 반면, 동아프리카형 수면병을 일으키는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 로데시엔스(T. brucei rhodesiense)는 급격하고 심각한 증상을 동반한다.
수면병의 초기 증상으로는 체체파리 물린 부위의 염증성 혹, 발열, 피로, 근육통, 림프절 비대가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증상이 비교적 가벼울 수 있지만, 치료받지 않을 경우 기생충이 혈액-뇌 장벽을 넘어 중추신경계에 침범하게 된다. 이때 환자는 수면 장애(낮 동안의 졸음과 야간 불면증), 정신적 혼란, 기억력 감퇴, 불안, 공격적인 행동 등을 보입니다. 심할 경우 혼수상태에 빠지며,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수면병은 치료가 가능하지만,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펜타미딘이나 수라민 같은 약물이 사용되며, 중추신경계 침범이 있는 후기 단계에서는 멜라소프로나 에플로르니틴 같은 치료제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더 효과적으로 알려진 니푸르티목스(Nifurtimox)와 에플로르니틴을 병용하는 방법이 개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