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쓰는데 이탈리아가 나와?”...50대女 ‘이 병’ 겪고 말투 변해, 왜?
뇌졸중 수술 후 이탈리아어 구사하듯 말해...외국어 말투 증후군이란?
뇌졸중에 걸린 뒤 갑자기 이탈리아 억양을 구사하게 된 50대 영국 여성 사연이 공개됐다.
최근 영국 매체 더 미러에 따르면 런던에 사는 알시아 브라이든(58)은 지난 5월 뇌졸중을 겪은 후 이탈리아 억양을 하기 시작했다. 뇌졸중 진단 전 알시아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증상을 보였다. 남편은 ”아내가 멍하니 쳐다보고 말을 하지 못하더라“고 설명했다. 곧바로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간 알시아는 경동맥 협착증으로 심장에서 뇌로 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뇌졸중이 발생한 상태였다.
병이 진행되면서 언어 장애는 더욱 심해졌다. 알시아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읽거나 쓰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오른쪽 얼굴이 처지기도 했다. 결국 7월 30일, 알시아는 경동맥 웹(carotid web)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받았다. 경동맥 웹은 경동맥 협착증의 드문 원인 질환으로 혈류 정체, 혈전 형성 등을 일으켜 뇌로 가는 혈관을 막는다.
수술 후 알시아는 의식을 되찾았고 말을 다시 할 수 있었으나 특이한 일이 발생했다. 알시아가 이탈리아 억양으로 말을 내뱉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알시아는 “간호사가 혈압을 잴 때 내가 말을 하니까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며 “동시에 나도 '지금 내가 말한 건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말을 하면 할수록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며 “영국 사람인 내가 이탈리아 사람처럼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알시아는 이탈리아에 방문한 경험도, 배운 적도 없다. 그가 뜬금없이 이탈리아 억양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의료진들은 알시아가 뇌졸중으로 뇌가 손상돼 ‘외국어 말투 증후군(Foreign Accent Syndrome)’이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알시아는 “나도 모르게 뇌가 이탈리아어처럼 단어와 억양을 바꾼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억양, 말투, 목소리 등이 변했다. 여전히 알시아는 이탈리아어처럼 말하고 있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뇌졸중을 앓고 나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말을 못하다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면서도 “외국어 말투 증후군이 나타나서 힘들다”고 말했다.
변한 자신의 모습에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제 성격, 정체성 등이 사라진 것 같다”며 “외국 억양을 가진 나는 내가 아닌 것 같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설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07년 첫 보고된 후 현재까지 약 100명이 앓고 있는 병
알시아가 겪는 외국어 말투 증후군은 외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말투가 부자연스러워지는 언어 장애다. 프랑스 신경학자인 피에르 마리(Pierre Marie)가 1907년에 처음으로 보고한 병이다. 이후 현재까지 약 100건 정도 보고될 정도로 드물게 발생한다.
환자는 발음 과정에 변화가 생겨 주변 사람들에게 외국어로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환자는 말하는 속도, 높낮이 등이 변하는 현상을 경험한다. ‘책’을 ‘잭’이라 하는 등 단어를 구성하는 요소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바꾸기도 한다. 위 사연처럼 영어를
뇌 손상·심각한 편두통 등이 원인...언어·심리 치료 등 받아야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 손상, 심각한 두통 등이 영향을 준다고 알려졌다. 뇌에서 기억력과 사고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외국어 말투 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 환자는 단어의 원래 발음을 기억해서 소리내지 못하고 근육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져 의도와 다르게 발음을 틀리기도 한다. 극심한 편두통으로 뇌 활동이 안정적이지 않고 과하게 활동해도 외국어 말투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
외국어 말투 증후군을 치료하려면 원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뇌에 이상이 있다면 적절한 치료를 진행하고, 손상이 없다면 언어 치료 등을 받는다. 언어 치료는 환자의 발음 과정을 파악해 고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외국어 말투 증후군 환자는 알시아처럼 외로움, 우울감 등을 느낄 수 있다. 방치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사람에 대한 불신 등도 심해질 수 있어 심리 치료가 동반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