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정작 큰 병은 놓치기 쉽다는데…

# 부산에서 아들 내외와 같이 사는 문 할머니(86)는 나이 탓인지 병이 여럿이다. 당뇨에다 신부전, 빈혈과 파킨슨병까지. 거기다 초기 치매도 있다. 무릎, 발목 관절염 있는 것은 당연하고…. 온갖 약을 아침마다 한 움큼씩 먹는다.

그런데, 최근 예상치 못한 이유로 수술을 받게 됐다. 배가 아파 응급실에 갔더니 대장암 판정이 나온 것. 주변 장기에까지 전이된 상태라 했다. 병원엘 그렇게 다녔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지금도 영문을 모르겠다.

부산 봉생기념병원 백승언 명예원장(외과)은 “요즘 이런 환자들이 부쩍 많다”고 했다. 전혀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증상으로 암을 발견하게 되는 케이스. 병원, 약국은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정작 큰 병은 놓친 경우다.

백승언 명예원장(외과, 오른쪽). [사진=봉생기념병원]

봉생기념병원 백승언 명예원장, "두 가지 이유 있다"

백 원장은 그 원인을 두 가지로 들었다. 하나는 병원에서 여러 의사를 만나지만 정작 개별 환자의 상황을 꿰뚫는 ‘주치의’(主治醫) 역할 해줄 의사가 없다는 것, 또 하나는 2년마다 받는 국민건강검진을 소홀히 하는 경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 할머니도 “병원 갈 때마다 온갖 검사를 이미 받고 있으니 건강검진 정도는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 여겼다”고 했다. 게다가 5년에 1번씩 받는 대장내시경 검사도 “설사약 먹고 장(腸)을 깨끗이 비우는 게 힘들어서 피했다”고도 했다. 병원을 늘 다니는 고령환자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뚜렷하다.

의사도 문제다. ‘빈혈’이야 워낙 여러 질환과 연관돼 있다지만, 정작 이 환자에게 대장 쪽 문제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요 포인트는 간과한 것. 다들 자기 전문과목만 깊이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령 환자에겐 마취하는 수면 내시경이 위험하다며 선뜻 내시경 검사를 권하지 않는 탓도 있다.

두 원인을 종합하면 “나무는 봤으나 정작 숲은 못 본” 셈이고, “사공(의사)은 많았으나 정작 배는 산(대장암)으로 올라가 버린” 셈이다. ‘주치의’ 문제야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하는 구조적 문제이니 잠깐 보류해두자. 하지만 건강검진을 건너뛰는 것은 다른 문제다.

2021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갑상선암을 제외하곤 대장암이 대한민국 암 발병률 1위다. 당연한 얘기지만, 50세 이상 발병률이 높다. 특히 65세 이상 비율이 약 70%에 이른다.

나이 들수록 몸에 세포 손상과 돌연변이도 쌓인다. 고혈압, 당뇨 등 대사증후군도 대장암 발병 우려를 높인다. 우리보다 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서구와 일본 등에서도 이미 입증된 결과다. 영국 같은 경우, 전체 대장암 환자의 82.7%가 60세 이상 노인이다.

조기 발견한다면 대장암은 “예후 좋은 암”

반면,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한때 ‘대장암 쓰나미’라며 호들갑 떨게 하던 급증세가 2011년을 기점으로 주춤하는 기세다. 또한, 가벼운 1기 환자 비중이 점점 높아간다. 10년 전엔 13% 정도였지만 최근엔 23%로 늘었다. 건강검진으로 대장암을 조기 발견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

게다가 대장암은 수술 예후가 좋은 암의 하나다. 치료 결과가 좋다는 것이다. 림프절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2기, 3기라 하더라도 완치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수술 전 사전관리부터 수술 후 재발 방지까지 환자 맞춤형 치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직장암은 항문 기능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와 직결된 만큼 수술을 하기 전에 종양 크기를 줄이기 위한 항암 화학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는 등 복합치료를 먼저 받게 된다.

재발 낮추고 항암치료 잘 견뎌내려면

수술도 복강경 등 최소침습 수술기법 발전으로 환자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합병증 발생도 많이 줄었다. 백 원장은 “암이 덩어리로 뭉쳐있다면 한 번의 복강경 수술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암 치료에 특화한 전문형 종합병원이 빛을 발하는 때가 바로 이때다. 외과, (혈액)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여러 분야 전문의들 협력을 통한 종합치료가 가능하기 때문. 환자의 나이, 기저질환, 전신 상태 등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도 그래서 가능하다.

특히 2기, 3기 환자 재발률도 많이 낮출 수 있다. 실제로 수술 후 항암치료를 병행한 경우, 재발률과 사망률을 각각 35%, 24% 정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의 환자 지지치료(Supportive Therapy), 즉 상담과 교육도 여기에 이바지한다. 나이 많은 환자 중엔 “이런 암 치료엔 뭘 먹으면 좋다”며 민간요법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선 그런 민간요법 식이 보다는 꾸준히 운동해서 평소의 체온을 높이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백 원장은 “자신의 몸 상태와 상황을 잘 아는 주치의가 있는 것이 최선이지만, 정기 건강검진을 빠뜨리지 않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차선책은 된다”고 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그에 따른 조기 발견, 거기에 현대 의학의 발전된 치료법이 합해진다면 아무리 암 진단을 받았다 해도 아직 희망은 있다는 얘기다.

백승언 명예원장(외과). [사진=봉생기념병원]
    윤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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