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간은 큰병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요?”
[Voice of Academy 15-인터뷰] 대한간학회 김윤준 이사장
간(肝)이 부었다, 간이 (붓다붓다 이제) 배 밖으로 기어나왔다, 간담(肝膽·간과 쓸개)이 서늘하다, 애간장(간과 창자)이 녹는다…. 간은 예부터 사람들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3000년 동안 독수리에게 간이 쪼였고, 《수궁전》에선 토끼 간이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한다.
대한간학회 김윤준 이사장(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은 “간은 그만큼 인체에서 중요한 장기라는 것의 반증”이라면서 “최근 간 질환의 진단, 예방, 치료법이 급속히 발전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간에 대해 소홀히 해 소중한 건강을 잃는 것이 현실”이라고 경고했다.
좌우 25㎝, 앞뒤 14㎝, 높이 7㎝ 정도의, 사람 내장에서 가장 큰 기관인 간은 인체에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대사에 관여하고(대사기능) 비타민 및 무기질의 대사와 호르몬 대사에 관여하며(합성기능) 온갖 독소를 해독해서(해독기능) ‘인체의 종합화학공장’으로 불리는 핵심 장기다. 이 공장은 문제가 생겨도 뚜렷한 표시를 내지 않다가, 갑자기 덜커덕 멈춰 ‘침묵의 장기’라고도 불리므로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나 건강검진에서 간지표가 좋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김 이사장은 강조했다.
-해방 후 한동안 간염은 ‘국민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만연했고, 얼마 전까지 간암은 한때 사망률 1위의 치명적 암이었다. 그런데 요즘 간염, 간암에 대한 경각심이 좀 줄어든 것 같다.
“여전히 간염과 간경변증, 간암 등 간질환은 무서운 병이고 희생자도 많다. B형 간염 바이러스 백신의 보급과 치료제의 발달,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법의 확립 때문에 바이러스성 간염 희생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이로 인한 희생자가 많은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B형 간염 백신을 보급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B형 간염과 이로 인한 환자가 많은 듯한데….
“한때 국민의 10% 정도가 B형 바이러스 보유자여서 ‘간염 왕국’이라는 이름도 있었지만 1990년대 백신 국가예방접종사업에 도입되면서 보유자 비율이 5%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수준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언제든 간염이 생길 수 있고, 급속히 간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한다.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다가 암이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 이가 적지 않다.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술 담배를 멀리 하고 정기적으로 의사를 찾아야 한다. 여성이 임신했을 때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면 수직감염 위험을 뚝 떨어뜨려 자녀가 간염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C형 간염은 어떤가? 한때 치료가 어려운 간염이라는 인식도 있었는데….
“지금은 C형 간염을 제때 발견하기만 하면 치료가 어렵지 않다. 8주 약을 복용하면 99% 이상 완치된다. 문제는 전 국민의 0.8~1%가 감염돼 있는데 상당수가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회는 건강검진 항목에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바이러스성 간염이 간경변증, 간암 등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도 간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술을 많이 마셨나?”하는 반응이 되돌아오곤 했다. 최근엔 바이러스 간염의 비율이 줄어들고 다른 간질환의 비율이 늘고 있다던데….
“그렇다. 바이러스 탓 간염은 줄고 있지만 식생활의 서구화와 과식을 부추기는 식문화, 덜 움직이는 환경 등의 영향으로 대사성 간염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민의 30~40%가 지방간 진단을 받기 때문에 이것이 무서운 병이라는 인식이 적지만 대사성 지방간도 간경변증으로 진행돼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대사성 간질환은 우선 초기 단계에서 식이요법, 규칙적 운동, 비만치료, 동반 질환 치료 등으로 내장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선 레즈디프라를 비알코올성 지방간 치료제로 ‘신속승인’했는데 이는 서구 의료제약계에서 대사성 지방간 치료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술을 덜 먹지만 알코올성 간염은 여전히 문제다. 술꾼들은 건강이 나빠지면 자기 의지로 술을 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 의지로 술을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거나 단주모임에 참석해 술을 끊어야 한다. 술을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훨씬 의미있게 되고 가족을 얻게 되며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술 마실 시간에 운동을 하면 간이 되살아나고 정신이 맑고 밝아지며 술친구 대신에 운동친구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