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파독 이끌고도 간첩 누명

[오늘의 인물] 이수길 박사

독일의 한국인 간호사들은 함께 꿋꿋하게 어려움을 헤쳐가면서 ‘민간외교관’ 역할을 했다.

1960~1970년대 한국 간호사의 독일 취업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수길 박사가 13일 독일 마인츠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유족이 뒤늦게 알렸다. 향년 95세.

고인의 자서전 《개천에서 나온 용》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 함경 북청군에서 태어난 그는 3세 때 앓은 소아마비로 왼쪽다리가 마비됐다. 원산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하다 6·25 전쟁 때 월남, 남한의 의사 국가고시에도 합격해 서울에서 ‘이수길 의원’을 열었고 신문에 의사칼럼도 연재했다. 고인은 1959년 해외유학 자격 고시에 합격, 국비 장학생으로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에서 어렵사리 소아과와 방사선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개원을 하다가 독일의 간호사 부족현실을 절감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1958년 성 베네딕도회의 파비안 담 신부가 경북 김천 성의상고(현 성의여고) 졸업생 30여명을 선발한 것을 시발로, 천주교에서 여학생과 예비수녀를 독일 간호학교로 보내고 있었다. 고인은 본(Bonn)대학병원 외과 이종수 박사와 함께 간호사를 모집해서 독일 병원들에 취업시켰다. 고인은 이에 더해서 오원선 보건사회부 장관과 간호사 파독을 상의했고 1966년 1월 파독 간호사 1진 128명이 독일에 도착하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당시 모든 간호사의 여권 수속까지 직접 챙겼다고 한다. 1만여 명의 간호사들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한국인 이미지를 독일에 퍼뜨렸으며, 정부가 독일 차관을 받아 경제성장을 일으키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고인은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때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돼 서울에서 고문과 위협 속에서 조사 받은 뒤 풀려나는 고충도 겪었다.

고인은 독일에서 소아과 의사로 활동하며 모국의 의료 발전에도 기여했다. 한국소아마비협회 창설을 이끌었으며 모국의 심장기형 어린이의 수술을 지원하는 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국민훈장, 독일공로십자훈장, 독일사회공로훈장 등 양국에서 여러 훈장을 받았으며 마인츠 최고 소아과의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간호사 파독 기사는 유승흠 칼럼 ‘독일로 간 간호사들은 어떻게 살았나?’ 참조(포털사이트에서 클릭해도 기사가 안보이면 코메디닷컴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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