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티에 병원 홍보하러 갔는가?
모시고 간 취재진 수가 의료진 수와 같은 병원도 있어
“아이티에 희망을 주세요”
출근길 지하철역 한 쪽에서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티 어린이를 도와달라는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1월 12일 서인도제도의 최빈국인 아이티에 규모 7.0의 강진이 덮쳤다. 대통령궁까지
무너졌고 정확한 사망자수를 집계할 수 없을 정도다.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다. 장 막스 벨레리브 아이티 총리는 “아이티 재건에 10년 이상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아이티는 지진발생 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저 막막하다.
자원봉사자들의 호소 덕분에 아이티를 답답하게 돌이켜보던 어느 날 아침. 아이티
지진 후 현지에 파견됐다 돌아온 의료진들이 전하는 뒷이야기들이 나를 씁쓸하게
한다.
현장에 갔다 온 한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노르웨이는 수술실과 검사
장비를 갖춘 이동병원을 들여와 어려운 시술도 했지만 우리나라는 감기나 배탈, 간단한
외상치료에 그쳤다”고 전했다. 대형병원과 종교단체 등에서 파견된 의료진을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보냈는데도 간단한 1차 진료에 그친 것이다.
아이티 지진이 발생하자 한국은 경제 선진국으로서, G20의장국으로서 발 빠르게
구호물자와 자금 지원을 발표했다. 이에 발맞춰 국내 대학병원들도 의료봉사단을
구성해 아이티로 속속 출국했다. 이러한 발 빠른 행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봉사단 구성 단계부터 잡음이 들려왔다. 몇몇 대학병원들은 자기네 의료진과
아이티 현장에 함께 갈 기자들을 봉사단원에 포함시켜 발표했다. 마치, 어느 병원은
어느 신문, 어느 방송사와, 또 다른 병원은 파트너 쉽을 다른 언론사와 맺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한 대학병원은 구호 의료진 숫자와 무료로 모시고 갈 기자단의 숫자가
비슷하기까지 했다. 봉사에 동행하는 기자들의 항공료와 숙식비는 모두 병원 몫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출국 전날까지 어떤 언론사 기자는 아이티에 함께 가는 자사 취재진
숫자를 왜 타사보다 적게 배정했는지 따지기도 했다.
어떤 방송사는 자기들의 방송 일자에 맞춰 봉사단이 출국해달라고 요청 하기까지
했다. 대형병원의 의료봉사 예산에 취재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의존한 취재진은
언론윤리에 어긋난다. 언론인 개인의 취재비를 회사로부터 따로 받았다면 자기 소속사에
대한 배임일 수도 있겠다. 그러함에도, 취재비용을 대신 내주면 자기 병원 홍보도
책임져 줄 것으로 기대한 우리의 병원 측이 혹시 먼저 각 언론사에 제안한 구도는
아닐까 싶다.
아이티 의료봉사를 다녀온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스페인의 경우는 다양한 분야의
의료진이 고루 체류하고 있었고 파견된 의료전문가들이 연합해 하나의 야전 병원을
급조할 만큼 공조를 잘하고 있더라”며 “우리는 아직 단발성 행사 성격이 강하고
공조환경은 열악하다”고 털어놨다.
‘우리 의료기술이 발전한 만큼 뒤늦은 곳에 되돌려 줘야 한다’ 또는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구호 정신과 의료진을 아이티에 발 빠르게 파견한 것은 크게
박수칠 일이다. 그러나 병원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의료진을 급조하고,
개별 병원의 국내홍보에만 너무 눈이 어두웠던 것은 아닐까? 아쉬움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