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無性) 생식 vs. 유성(有性) 생식

[차 권하는 의사 유영현의 1+1 이야기] 15. 중국 10대 명차 ‘대홍포’

타이베이(臺灣)를 마주 보고 있는 중국 푸젠성(福建省) 북쪽에는 무이산이 자리 잡고 있다. 커다란 바위산과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을 가진 곳. 중국의 10대 명차, 청차(靑茶)의 고향이기도 하다. 청차는 차의 산화 갈변 측면에서 녹차와 홍차 사이쯤 위치하는 차이다.

대홍포 차나무 모수. [사진= 유영현 제공, 출처= 겸리 홈페이지]
위 사진은 대표적인 청차인 ‘대홍포’(大紅袍)의 모수 사진이다. 대홍포 모수의 수는 전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세 그루, 어떤 이는 네 그루, 또 어떤 이는 그 아래 두 개를 포함하여 여섯 그루라고 주장한다. 버젓이 번호 6까지 붙어 인터넷에 사진이 떠돌지만 몇 그루가 진실인지는 알기 어렵다.

전설에 의하면, 과거시험에 나선 한 선비가 대홍포 나뭇잎으로 만든 차를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 선비는 후에 황후가 병에 걸렸을 때 자신이 과거 마셨던 차를 소개한다. 황후는 차를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였다. 황제는 기뻐서 차나무에 붉은 비단옷을 하사하였다. 이 비단옷을 받은 차 나무는 이후 대홍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황제가 차나무에 하사한 붉은 비단옷...'대홍포'라는 별칭 얻은 청차나무

대홍포가 귀한 차 나무로 알려진 후, 사람들은 이 나무 번식에 나섰다. 차나무는 ‘무성(無性)생식’이 가능하다. 암그루, 수그루가 따로 없다. 차나무 잎을 따서 땅에 심으면 잘 자란다. 대홍포 모수는 단지 몇 그루였지만 지금 무이암산 전역에는 엄청나게 많은 대홍포 나무가 자라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마시는 순종 대홍포는 진덕화라는 차명인이 1985년 무성생식에 성공하여 번식시킨 차나무에서 생산된다. 대홍포 모수 주변에는 이제 대홍포 차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무이산에서 생산되는 대홍포 총량만 약 5천t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이처럼 엄청나게 번식한 덕에 세계인은 순종 대홍포 맛을 값싸게 접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순종 대홍포라 하여도 차 제작자에 따라 맛이 달라 현재 판매되는 대홍포 맛은 같지 않다.

대홍포는 푸젠성 북부의 다른 청차들처럼 세로로 꼬여있으며 비교적 산화를 높여 제작하므로 찻잎도 갈색이고 탕색도 갈색이다. 대홍포의 맛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대홍포는 입속에 처음 머금은 순간에는 설탕을 가볍게 태운 듯한 진한 초당향(焦糖香)이 나며, 뒤이어 곧 진한 계피 향과 생강 향이 느껴지고, 세 번, 네 번째 차를 우려내면서 점차 그 향기가 그윽한 난향과 수선화 향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홍포의 이러한 향은 찻물을 여섯 차례 이상 우려내도 변화가 없다.”

심지어 아홉 번을 우려내도 그 맛을 잃지 않는다는 ‘구포불실본미’(九泡不失本味)라는 말도 떠돈다. 처음엔 죽연향, 나중 연유향, 5~6번 째는 계화향과 7~8번 째는 난향, 9~10번 째에는 연유향을 머금은 옅은 계화향과 죽염향이 난다고도 한다. 그러나 대홍포를 마시는 모든 이들이 이런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두 나라는 수교하고 중국은 세계 시장으로 나온다. 이때 닉슨은 마오쩌둥(毛澤東)에게서 대홍포 200g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미국으로 돌아간 닉슨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중국과 같이 큰 나라에서 적은 양의 차를 선물하였다”는 말을 흘렸다.

이 말을 들은 당시 중국의 수상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다음과 같은 말을 백악관에 전하였다. "주석(主席)께서는 이미 천하의 반을 각하(閣下)께 드렸습니다.”

미중 수교 직후 마오쩌둥이 닉슨 대통령에 직접 선물한 청차

마오 주석이 대홍포 절반을 닉슨 대통령에게 주었다는 수사적인 표현이었다. 그들에게 대홍포는 천하를 의미하였다. 이후 대홍포는 1998년 경매에서 20g에 2천만 원, 2005년 경매에서 20g에 3천만 원에 거래되었다.

현재 대홍포 모수는 보존을 위하여 잎을 따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간혹 자신이 소유한 대홍포가 모수 잎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사실일 리 없다.

대홍포가 무성생식으로 엄청나게 번식된 이후, 시장에서 판매되는 차의 질은 천차만별이니 “모수로 만든 차”라는 주장을 듣고 차 맛에 실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대홍포 무성생식 덕에 너도나도 대홍포 잎으로 제작한 차를 편하게 즐기고 있다.

대홍포는 향기와 맛으로 기쁨을 주지만, 대홍포 번식은 인간 고유의 생식행위인 유성(有性)생식에 대한 근심 가득한 성찰 거리를 제공한다. 동물 복제의 성공으로 인간의 무성생식도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 사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인류의 철칙으로 여겼던 유성생식의 윤리학에 도전이 되고 있다. 유성생식은 암컷과 수컷의 교접으로 유전적 교환을 통해 한 개체가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성생식으로 탄생한 모든 아이는 부모와 유전적으로 닮지만, 유전적으로 고유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복제에 의한 무성생식은 인간 고유의 탄생과정인 유성생식을 급진적으로 벗어나는 일이다.

대홍포 무성생식은 식물 번식의 문제에 국한되지만, 인간복제는 생식과 번식을 넘어서 오랜 기간 인류가 간직하고 받아들였던 여러 틀을 망가뜨린다. 성, 가족, 결혼, 생식, 생명에 대한 기존 윤리를 위협한다. 유성생식을 당연한 생식 수단으로 믿는 이들에게 무성생식은 자연스러운 인간적 방법에서 벗어난다. 도덕적 혼란을 일으킨다.

부모 한쪽에서 복제된 인간은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다른 자손과 달리 개성과 정체성 상실의 혼란을 겪을 것이다. 복제된 자신과 복제의 틀이 된 한쪽 부모와의 관계는 시차를 둔 쌍둥이의 관계가 된다. 유성생식을 떠나 개체가 탄생하면 가족의 개념에도 큰 도전을 준다.

대홍포는 무성생식으로 확산...하지만 사람은?

인간복제 허용론자들은 ‘질병 치료’라는 인간의 욕구 만족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홍포 무성생식은 차를 마시려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하게 했지만, 복제된 인간의 장기를 치료에 응용한다는 목표는 실제 달성하기는 어렵다. 병든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를 자신에게서 복제된 인간으로부터 취한다면 복제된 인간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복제된 인간의 장기를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데 수반되는 윤리, 종교, 법적 문제는 더 복잡하다. 복제된 인간의 장기 사용에 대한 결정권을 누가 가지는지에 대한 논란, 인류가 그런 논란에 쉽게 일치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오만한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도 인간복제에 대해 학자들 간 복잡한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의 논쟁은 지엽적이고 시원스럽지도 않다.

학자는 상대 진영의 비판을 벗어나는 데 더 주력한다. 마음속으로는 분명히 반대하는 학자도 토론에 들어가면 ‘편협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반대편 의견을 강하게 논박하지 않고 지나치게 조심한다.

여론이 잣대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복제에 대한 정보가 어떤 내용으로 제공되느냐에 따라 여론은 일정하지 않고 때에 따라 출렁이게 마련이다.

최근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 여론몰이 중이다.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 법은 인류가 오래 간직한 가족과 사회에 대한 기본 틀을 흔들게 된다.

이를 막으려는 측도 여론을 모으려 길바닥으로 나온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여론이 좌우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무성생식으로 번식된 대홍포는 차를 마시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맞춰주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을 맞춰준다는 대홍포 복제 시각으로 인간복제를 합리화하면 안 된다.

인류는 애초부터 유성생식으로 대(代)를 유지하였고, 가족과 사회를 이루는 인문학적 틀을 유지하였다. 기본은 지켜야 한다. 유성생식은 인류의 얕은 욕망을 만족하게 하려고 포기할 수 있는 윤리가 아니다. 유성생식은 기본이다.

유영현 엘앤더슨병원 진료원장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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