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전자약 선도기업?… ‘뇌를 가장 잘 아는 기업’ 되고 싶어”

[헬스케어 기업탐방 4] 와이브레인

멘탈헬스케어 전문 기업 와이브레인 이기원 대표가 코메디닷컴과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자원 기자.

디지털은 산업계 여러 분야에 붙는 접두사가 됐다. 헬스케어도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 기반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의료기기가 연이어 등장했다.

뇌와 신경세포에 전기 신호를 전달해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기인 전자약이 대표적이다. 인체 내에서 화학 작용을 통해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고 치료하는 전통적인 의약품과 다르게 전자기 자극을 활용한 새로운 치료 작용 원리 덕에 헬스케어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마음에 붙이는 반창고’를 위해 뭉친 공학도들

최근 코메디닷컴은 세계 최초로 우울증 분야 전자약을 개발하며 국내 전자약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와이브레인’의 이기원 대표를 만났다.

와이브레인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젊은 공학자들이 만든 회사다. 전기 자극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연구를 하던 뇌공학자들과, 전자기기를 얇고 작게 만드는 연구를 하던 이 대표가 2013년 뜻을 모은 것. 이 대표는 와이브레인의 시작이 ‘마음에 붙이는 반창고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반창고도 원래는 수술실에서만 사용하던 의료기기였습니다. 존슨앤드존슨이 수술 시 환자들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멸균 거즈였죠. 이걸 존슨앤드존슨 임원이 집에서 아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밴드 형태로 만든 게 그 유명한 ‘밴드 에이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모든 가정에 구비해놓은 반창고처럼, 우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솔루션을 보급하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며 “우울증을 첫 적응증으로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한 와이브레인은 연구인력 17명을 포함해 전체 직원 42명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울증 환자에게 흔히 발견되는 증상은 상황을 판단하고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동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울증 치료는 전두엽의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존에 우울증 치료를 위해 사용하던 항우울제는 신경 전달물질에 작용한다. 이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신경 부위에 영향을 미치거나 전신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전류를 대뇌피질에 흘려보내는 마인드스팀

반면 와이브레인의 전자약 ‘마인드스팀’은 두피를 통해 전기자극을 전달한다. 2mA(밀리암페어)의 전류를 전달하면 대부분은 두피나 두개골로 분산되고, 실제 대뇌 피질까지 전달되는 전류량은 20~40% 정도다. 이 나머지 전류가 우울증 환자의 배외측전전두엽을 자극해 활동을 증가시키는 원리다.

와이브레인 본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연구원이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와이브레인]
당연히 사업화 이전에 신뢰할 만한 수준의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이 선행됐다.

“마인드스팀의 한 세대 이전 기술로 알려진 ‘경두개자기자극술’은 전자기 코일로 발생시킨 자기장을 두뇌로 통과시키는 기술입니다. 근육과 신경을 자극해 흥분성 변화(액션 포텐셜)를 일으키는 방법인데, 인위적인 자극을 만드는 방식이다 보니 잘못 사용하면 뇌전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죠.”

상황이 반전된 것은 2016년 즈음이다. 자기장 자극을 전기 자극으로 바꾸면 신경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성상교세포에 칼슘이 증가해 뉴런 사이의 연결 강도가 강해진다는 연구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기 자극은 액션 포텐셜을 일으키지 않아 뇌전증 등의 부작용으로부터 안전한 치료가 가능했다.

“임상을 통해 경두개전기자극술로 배외측전전두엽을 자극하면 항우울제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겠다고 보고 마인드스팀을 개발하게 됐어요. 2020년에 종료한 다기관 임상에서는 6주간 30분씩 마인드스팀을 사용했을 때 우울 증상 관해율이 62.8%로, 항우울증(관해율 50%)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였습니다.”

위와 같은 연구 결과와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와이브레인의 마인드스팀은 2021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같은 해 10월 시장에 정식 출시됐다.

현재 마인드스팀은 133개 병원(상급종합병원 12처, 병원급 32처, 의원급 89처)에 도입됐다. 월 처방 건수는 평균 4500여 건이며 누적 처방은 지난달 기준 7만 건을 넘어섰다. 우울증 전자약 시장을 개척한 제품임을 감안해도 폭발적인 반응이다.

이 대표는 이러한 시장 반응에 대해 “시장의 목마름을 채웠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울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적용했을 때 반응률은 1차 치료에서 약 50%, 2차 치료로 가면 30% 이하로 약이 충분히 듣지 않는 환자들이 많았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장기 재택 치료 가능한 마인드스팀 폭발적 반응

특히 기존에 항우울제를 대체하기 위해선 장기간의 상담치료나 경두개자기자극술 등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야만 하는 치료법들밖에 없었는데, 장기 재택 치료가 가능한 유일한 비약물 치료법으로 마인드스팀이 등장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을 공략했다는 것이 와이브레인 측 분석이다.

현재 와이브레인은 마인트스팀 외에도 전주기적인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뇌파진단기기 ‘마인드스캔’과 환자 관리 시스템 ‘마인드(MINDD)’다. 뇌의 기질적 이상을 판별할 수 있는 측정장비인 마인드스캔은 국내 273개 병의원에 입점해 누적 측정 14만 건을 돌파했다. 웹이나 카카오톡과 연동해 불면증·우울증·ADHD 등에 대한 문진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마인드 역시 전국 470개 의료기관에 입성했다. 수치로 환산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체의 약 30%에서 해당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이외에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공동으로 ‘우울증 바로 알기 대국민 캠페인(블루밴드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우울증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앞장서서 알리고 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어떤 병원을 가야할 지 주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울증 전문 의료기관 인증제도와 온라인 매칭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결국 이 모든 솔루션이나 활동을 종합하면 와이브레인이 원하는 것은 ‘내 손안의 정신과’입니다. 현재는 우울증을 타겟하는 전자약이 우리의 최대 강점이지만, 정신 건강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더 다양한 적응증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에 치매, 경도인지장애, 조현병, 불면증, 편두통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후속 임상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대표가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와이브레인의 비전은 어떤 모습일까. 와이브레인의 미래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깊이 고민하던 그는 “국내에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최근 일론 머스크의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칩을 심었어요. 인간의 뇌를 신체 외부까지 확장하겠다는 것인데, 우리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와이브레인이 지금까지 축적한 기술력과 인허가 노하우를 활용해서 더욱 고도화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시대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와이브레인은 지난 3년간 현대자동차와 함께 사지 마비 환자를 위한 인터페이스 구축 연구를 진행해왔다. 현재는 전동 휠체어와 전동 보행 로봇을 조작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이 대표는 “단순히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을 넘어 뇌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뇌나 척추와 관련한 다양한 질환이나 장애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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