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예능, 그리고 헬스케어 데이터

[최낙천의 건강세상 건강국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날씨가 화창해지고 봄 기운이 완연해질 무렵, 골프 장비 회사들은 새로운 시즌에 맞춰 온갖 기술이 장착된 신상품을 출시한다. 단 몇 미터라도 더 날아가는 드라이버 티샷을 꿈꾸며, 핀 옆에 딱딱 꽃히는 아이언샷을 꿈꾸며 대한민국 골퍼들은 올해도 여지없이 겨우내 모아둔 비상금을 털게 될 것이다. 필자의 오랜 친구 중에 매년 봄만 되면 새 드라이버를 들고 나타나 10년째 90타대를 치는 친구가 있다. 라운드 전부터 빗 맞아도 반듯이 날아 간다는 둥 비거리가 얼마 늘었다는 둥 열심히 설명하지만 끝날 때 보면 여전히 스코어는 90타대이다. 물론 14개의 티샷 중 한 두개는 정말 잘 맞아 나가기도 한다.

근데, 수십만원을 지불했을 그 친구의 기분을 생각해 매번 차마 해주지 못했던 말이 하나 있다. “드라이버가 무슨 죄인가. 다 우리 몸과 멘탈이 문제지!” 골프 좀 쳐본 독자라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90도로 휘던 ‘관광샷’이 드라이버 바꾸었다고 반듯이 날아가고 위아래로 홀컵을 빗겨가던 퍼팅이 퍼터 교체 후 홀에 쏙쏙 들어간다면 진작 모든 장비회사들은 망했을 거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의 답은 인공지능(AI)이 설계한 장비가 아니라 우리 몸과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첫 홀 티박스에 딱 올라가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장비가 훌륭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난 2021년 열렸던 도쿄올림픽 양궁 경기에서는 비단 일반인 뿐 아니라 운동선수에게 있어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데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다. 흔히 양궁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로 바람을 생각한다. 그래서 과녁 위에는 깃발이 있고 대개 중계화면의 한쪽 구석에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나타내는 화살표가 표시되곤 했다. 그런데 도쿄올림픽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데이터가 TV 화면에 등장했다.

여자 개인전 결승전이었다. 결승전에 올라온 대한민국의 안산 선수와 러시아의 오시포바 선수는 예정된 5세트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한 발을 더 쏴서 승자를 결정하는 슛오프까지 치르게 된다. 결론적으로 안산 선수는 10점을 쏘고 오시포바 선수는 8점을 쏴서 안산 선수의 금메달로 대회는 마무리 되었지만,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대에 올라가서 활 시위를 당긴 이후 슈팅까지의 몇 초 동안 보여진 두 선수의 심박수의 변화였다. 안산 선수의 심박수는 슈팅 순간에 118에 머문데 반해, 오소포바 선수는 167로 단 몇 초 만에 심박수가 급격하게 상승한 것이다.

2021년 도쿄올림픽 양궁 결승전에서 경기하는 안산 선수(오른쪽)와 오시포바 선수. [사진=KBS 캡처]
심박수가 메달의 색깔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적 선수끼리 경쟁에서도 신체와 정신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양궁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한 바람은 모든 선수에게 유사하게 작용하는 외생적 요인이다. 그러나, 화살을 쏘는 선수의 육체와 정신적 상태는 내생변수로 2~3초 뒤에 실현될 점수에 대해 통계적 예측력을 가진 데이터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이러한 데이터의 실시간 측정이 불가능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발달로 개인의 신체 정보를 정확하고 쉽게 취득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지난 도쿄올릭픽에서 양궁 선수의 심박수를 측정하는데 사용된 기술은 패치나 웨어러블이 아니라 카메라를 이용해 미간의 떨림을 측정하는 기술이었다.

필자는 헬스케어를 개인의 건강정보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사업으로 정의한다. 꼭 의료정보를 활용한 진단, 처치와 같은 전통적 의미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다양한 건강정보가 의료라는 컨텍스트를 벗어나 스포츠, 교육, 금융, 심지어는 예능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헬스케어의 정의가 확대되어야 하고 확대될 것으로 믿고 있다. 개인의 다양한 건강정보는 교육에서는 집중력으로, 금융에서는 신용도로, 예능에서는 흥분도로 해석되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가 만들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 중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잊혀진 또는 무명의 가수들이 경연 과정에서 재평가를 받고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기획 의도가 참신한 프로그램이다. 다만, TV를 통해 전달하기 어려운 현장의 감동을 심사위원들의 과장된 표정과 말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를 보인다. 만일 심사위원들의 맥박, 호흡, 동공 및 얼굴 근육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지표화해서 시청자에게 보여 준다면 현장의 어떤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 시청자에게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헬스케어 데이터와 이종산업의 결합은 마이데이터가 확대될 2025년부터는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개인의 다양한 건강정보가 ‘건강정보고속도로’를 통해 정보의 주인인 개인에게 제공되고, 개인은 본인의 건강정보를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유리한지 판단하는 세상이 다가 오고 있다. 금융 마이데이터가 소비자에게 외면 받은 것은 금융 데이터를 금융적 의미로만 해석하고 진부한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존 문법을 벗어나 이종의 컨텍스트에서 해석하고 소비자가 효용을 느끼는 서비스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이데이터가 열어갈 데이터 산업 시대에 전통기업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은 다양한 이종데이터를 이용해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필요를 느끼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역량이다. 그 중심에 헬스케어 데이터가 있다.

    최낙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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