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가 의대 교수·전공의와 대화하라

[박효순의 건강직설] "법적 조치라는 강공 일변도, 불이 더 번질 수도"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1970년대 초, 더 정확히 말하면 1971년 9월 한국 의료사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전공의 파업이 있었다. 겨우 쌀 두 가마 정도를 살 수 있는 열악한 급여와 해외여행 제한 등이 전공의들이 들고 일어난 원인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시작된 전공의들의 사표가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전국 주요 병원으로 번지자 급기야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와 민관식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장관이 서울대 의대 강의실에서 교수 및 전공의들과 대화를 통해 해결점을 찾았다.

1990년대 중반인가 후반까지만 해도 서울대병원에 ‘무급 펠로(Fellow, 전임의)’가 있었다. 펠로는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의사들이 더 세부적인 전공 분야를 위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대학병원에 남아 일과 수련을 병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은 이런 펠로 중 절반가량을 무급으로 뽑았다. 무급이어도 경쟁률이 치열했다. 서울대병원에서 펠로를 마치면 교수요원이 되는 데 매우 유리했다. 신생 대학병원의 교수나 과장으로 가는 것도 수월했다. 그러나 무급 펠로는 병원에 소속되어 있지만 제도적인 혜택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를 들어 직장 건강보험증이 나오지 않아 건강보험료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이런 무급 펠로의 문제점을 파헤친 필자의 첫 보도로 인해 관련 기사와 비난 여론이 언론을 도배하자 무급 펠로는 곧바로 사라졌다. 매년 200명이 넘는 펠로 중 100여 명이 무급으로 일했으니 그 인건비는 가히 엄청난 규모다.

1971년 전공의 파동에 참가했던 전공의들은 이제 80세 내외의 나이가 됐고, 1990년대 무급 펠로로 일했던 전임의들은 대개 환갑의 나이가 지났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전공의뿐 아니라 ‘포스트 전공의’ 펠로를 저임금이나 무급으로 부렸던 한국 의료의 아픈 상흔히 지금도 남아있을 터이다.

2024년 2월, 전공의뿐 아니라 인턴(수련의), 펠로, 의대생까지 “현직을 버리겠다”며 뛰쳐 나갔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의대 정원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건대 이것이 다가 아니다.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전공의 과정은 받는 급여에 비해 긴 근무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교수를 보조하고 환자를 대면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52시간 근무 법제화 이후에도 연장 근무는 일상적으로 이어졌다. 전공의들이 제 시간에 퇴근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병원이 지금도 상당하다. 한 마디로 너무 힘겹다. 전공의들이 힘드니 교수들도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 큰 폭의 의대 정원 증원이 ‘물잔’을 크게 넘치게 했다.

지난 3월 5일, 교육부가 의대를 가진 대학의 의대 정원 신청 결과를 발표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학들이 신청한 인원은 정부가 제시한 2000명보다 훨씬 많은 3401명이나 됐다. 그런데 교육부는 전체 인원과 지방과 수도권 인원 비율, 각 권역 인원 현황만 발표하고 대학별 인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학들도 몇 명을 신청했는지 함구했다. 그러다 보니 언론이 각개전투식으로 취재하여 어려 대학의 증원 규모가 드러났다.

교육부는 대학별 증원 신청 숫자를 왜 공개하지 않나? 언론이 그 숫자 파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모르겠는가? 당연히 공개가 필요한 일이었다. 뭔가 숨겨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인가? 감추는 건 속이는 것과 거의 다름없다. 그래 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게다가 이때다 하고 ‘의대 정원을 확 늘리고 보자’는 일부 대학의 ‘날나리 행정’ 또한 가관이다. 현재 정원의 몇 배를 늘리면 교육과 실습은 어찌 감당하려는가?

전공의들이 쪽잠을 자며 뒤척이면서도 ‘미래의 꿈’을 꾸는 의국에 불이 꺼졌다. 교수들도 이제 지쳐간다. 제자들을 불러들일 마뜩한 명분이 없다.

정부가 전공의와 인턴, 의대생들에 대한 법적 조치라는 강공 일변도로 나가고 있으니 불은 더 번질 조짐이다. 김종필 총리와 민관식 장관이 현재 있다면 어떤 묘수를 냈을까? 한국 의료의 미래는 젊은 의사들과 의사의 길을 걷는 학생들이 주인이다. 최소한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현장에 나서는, 정부 차원에서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공개 대화의 장’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박효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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