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또다른 뇌관 ‘혼합진료 금지’… 의원들 줄도산 부를까?

건보재정에 막대한 악영향...의료계 "저수가 보충해주는 수익원 막는 꼴"

지난해 도수치료 실손보험금은 1조원을 돌파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와 의료계가 한치 양보 없이 대치하면서 전공의 줄사직 사태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의사 단체는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외에도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패키지가 의료 시스템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장 가장 큰 저항에 직면한 것이 혼합진료 금지다.

의료계 “의료 인프라 지탱해온 건 비급여 진료”

이달 1일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중 하나로 혼합진료 금지를 내걸었다. 혼합진료는 한 명의 환자에게 급여와 비급여 의료 행위를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범위는 ‘비중증 과잉 비급여’로 한정했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이 대표적이다.

혼합진료는 실손보험 등장과 함께 의료비를 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이 됐다. 큰 부담 없이 비급여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와 비급여 진료 증가로 수익이 늘어난 병원의 욕구가 어우러지면서 전체 의료비는 빠르게 증가했다. 대표적인 비급여 진료인 도수치료 실손보험금은 1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이런 진료 행태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하는 것은 물론, 환자의 의료비 부담까지 높인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혼합진료로 건강보험 재정이 부담하는 비용은 연간 640억원에 달한다. 환자의 비급여 본인부담액은 2013년 17조7129억원에서 계속 늘어 2021년 30조원을 돌파했고, 이듬해에는 32조3213억원까지 늘었다.

반면, 의료계는 혼합진료 금지가 의료 인프라 붕괴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급여만으로는 적자를 면할 수 없는데,  비급여 진료마저 엄격하게 통제할 경우 병원들이 폐업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료계를 대변하는 단체인 바른의료연구소는 “아이러니하지만 현재의 급여 진료 인프라를 유지시킨 것은 비급여를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혼합진료 금지를 추진하면 저수가 체계에서 힘들게 버텨왔던 1, 2차 의료기관들의 연쇄 도산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역시 21일 성명에서 혼합진료 금지가 최선의 진료를 제한한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혼합진료 금지 추진 등을 담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 지나친 통제라고 반발한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언론 브리핑에서 혼합진료로 부당한 이익을 얻는 의사들을 정부가 아닌, 의협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의료계 스스로 자정활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필수의료 강화 위한 장기 로드맵 필요 

혼합진료와 실손보험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것처럼 의료시장이 환자 질병을 치료하는 필수진료가 아닌, 수익에 급급한 비급여 진료에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나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필수진료 살리기라는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정부가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현재 실손보험은 비급여 진료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에서 과잉진료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본인부담금까지 보장해주는 시스템”이라면서 “결국 이같은 잘못된 제도 탓에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 크게 늘었고 비급여 지출도 급증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혼합진료 금지’는 비급여 통제가 아니라 실손보험 민원수리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통제가 아닌 혼합진료 전면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신 필수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국민들이 필수적인 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만약 현재 실손보험 시스템으로 인한 누수를 막는다면 필수 진료 분야의 수가 인상 여력도 생길 수 있다”면서 “불필요한 낭비를 막아 필수의료 보장을 강화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수의료의 낮은 수가를 비급여로 돌려막는 것은 비효율적인 재원 배분이라는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혼합진료 금지를 통한 실질의료비 절감방안’ 보고서 역시 혼합진료 금지 전제조건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내세웠다. 보고서는 급여‧비급여 혼용 문제로 △건강보험 급여 재정의 비효율 증대 △비급여 수입 의존 및 진료 제공 체계의 왜곡 △비급여 허용에 따른 민간 의료보험 시장 팽창 등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혼합진료 금지에 있어 비급여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방식은 현실적 수용성이 떨어지는 문제와 함께 임상 현장에서 공급자와 환자 저항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혼합진료에서 급여 중심의 단계적 전환을 유도하되, 질환 특성 등을 고려한 일부 혼용을 허용하는 운영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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