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의사들, 척추수술 배우러 한국 찾는 까닭은?

[Voice of Academy - 학회열전]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는 일반인의 척추건강을 지키기 위해 캠페인과 유튜브를 통해 올바른 건강지식을 알리고 있다. 조정기 회장(왼쪽, 당시 대외협력이사)과 조용은 고문(오른쪽, 당시 회장) 등이 2017년 척추질환 강좌에서 요통 예방운동법을 알려주고 있다.[사진=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Neurospine(뉴로스파인)》은 피인용지수(IF)가 세계 척추 분야 학술지 가운데 정상권이다. 2004년 《Korean Journal of Spine(코리언 저널 오브 스파인)》으로 선보였다가 2018년 일본, 대만 학회의 학술지를 흡수하면서 이름을 바꿨고 세계 각국 의사들의 관심과 눈길을 끌더니 피인용지수(IF) 3, 4점을 넘으면서 미국신경외과의사협회(AANS)가 발간하는 《JNS-Spine》, 리핀코트 윌리엄스 앤 윌킨스 출판사가 펴내는 《Spine》 등을 차례로 추월했다. 현재 북미척추학회(NASS)가 발간하는 《The Spine》 바로 턱밑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정상권 영문 학술지 발간

“국내 신경외과 의사들이 현미경수술을 적극 도입한 데다가 내시경수술에서 세계적으로 앞서갔습니다. 대학병원 교수와 개원가 전문의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경쟁해 수술 실력이 올라갔고요. 여기에 조용은(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현재 윌스기념병원), 송근성 회장(부산대병원)이 이끌고 하윤 편집장(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현승재 부편집장(분당서울대병원) 등이 밤낮없이 노력해 영문 학술지의 성공적 도약을 이뤄냈습니다.” -조정기 회장(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학회는 학술지뿐 아니라 학술대회에서도 세계 학계의 ‘척추 역할’을 하고 있다. 학회는 전신인 대한척추신경외과연구회 시절인 1997년 일본척추신경외과학회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열며 협력하다 2010년부터 대만, 중국, 호주 등과 공동학회를 개최해왔고 지난해부터는 매년 국제학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광주에서 열린 ‘Neuro Spine Congress 2023’에는 700명이 참가했고, 올해 대회에선 1000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학회의 전신인 연구회가 출범한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이 학회가 이처럼 세계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한 의사는 거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척추수술은 정형외과에서 주로 담당했고, 군병원에서 신경외과 의사들이 정형외과 의사처럼 수술을 하는 정도였다.

연구회 출범은 한양대 정환영 교수와 연세대 김영수 교수가 주도했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를 정년퇴임한 ‘뇌척추질환 명의’ 정천기 교수의 선친인 정환영 교수는 광주서중을 나와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남대병원 외과 조교로 근무할 때 6·25 전쟁을 맞았다. 광주국군통합병원과 서울 용산 미군 121후송병원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도미, 샌프란시스크 레터만 통합병원에서 신경외과 전문의로 활약하다 귀국했다. 그는 국군대구병원에 신경외과를 창설했으며 경북대, 고려대, 연세대 교수를 거쳐 한양대의료원이 출범할 때 신경외과 주임교수로 부임했다. 정 교수는 1978년 대한신경외과학회장, 1984년 대한미세수술학회장을 지내고 나서 대한척추신경외과연구회 설립에 착수했다.

혼자선 엄두를 내기 힘들 때였지만 연세대 선배가 엄하게 길러낸 후배가 있었다. 전쟁 때 군의관 선배이자 미국에서 신경외과 전문의 자격을 따고 한국 최초 신경외과 전문의가 된 이헌재 교수가 연세대 신경외과를 뇌혈관질환(이규창), 뇌비혈관질환(정상섭), 소아신경외과(최중언), 척추질환(김영수)으로 나눠 제자들을 육성했던 것. 척추 분야의 김영수 교수는 영국 국비 장학금으로 스토크 맨데빌 병원에서 수련하고 미국 뉴욕대병원, 하버드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매릴랜드대병원 등의 방문교수로 실력을 쌓고 귀국했던 의사.

정환영 교수는 연세대 교수 근무 때 전공의였던 김영수 교수와 함께 1987년 연구회를 출범시켰다. 연구회는 정형외과 의사들의 척추외과연구회보다 3년 늦게 출발했지만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척추 치료의 수준을 높여갔다.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는 지난해 9월 광주에서 ‘Neuro Spine Congress 2023’ 을 개최했다.학회에는 미국, 스위스, 일본, 중국, 일본 등에서 참석한 90여명의 해외연자를 포함, 7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 행사는 9월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다. [사진=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내시경수술 경험 바탕 외국과 경쟁하며 수술법 향상

연구회는 1999년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로 승격했으며 산하에 대한최소침습척추수술연구회, 대한경추연구회, 대한척추변형연구회, 대한척추신경외과기초연구회, 대한척추골다공증연구회, 대한척추종양연구회 등을 두면서 규모를 키워왔다. 이 가운데 최소침습척추수술연구회는 대한최소침습척추학회(KOMISS)로 독립해 영문 학술지 《JMISST》(Journal of minimally invasive spine surgery and technique)를 발간하고 있다.

“척추신경외과학회의 급속한 발전에는 1990년대부터 척추 수술 기구들이 급격히 개발, 보급되면서 수술 성적이 좋아진 것이 첫 번째 원인이지만 유럽에서 내시경수술을 도입한 전문병원들의 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부 의사들이 수술을 남발할 때에는 학회의 교수들이 제어하면서 균형을 맞췄지요. 신경외과 의사들이 대학과 전문병원을 오가며 근무하거나, 또는 서로 소통해온 것이 대한민국 척추 수술의 질을 높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정기 회장

2000년대 초 일부 전문병원에서 비급여 수술을 남발하자 연세대 윤도흠, 순천향대 신원한, 중앙대 김영백, 한양대 오성훈, 성균관대 어환, 경북대 성주경 교수 등 척추신경외과학회의 주축 의사들은 척추외과학회 의사들과 함께 ‘척추포럼’을 만들어 자정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협력이 강화된 두 학회는 2008년부터 ‘한국계 미국인 척추학회’와 함께 공동학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대만, 호주 등 학회와의 협력으로 세계 척추학계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됐다는 설명이다.

학회가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전문병원들이 엄청난 내시경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 병원과 ‘논문 발표 경쟁’을 벌이면서 수술법이 급속 발전했다. 엄진하 박사를 비롯한 의사들이 단일공 내시경과 현미경수술기구의 장점을 결합해 개발한 양방향 내시경 수술의 확산을 비롯, 한국만의 치료법도 선보였다.

조 회장은 “척추신경외과학회과 국내 치료법의 발전은 자연스레 ‘K-Spine(척추)’으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척추수술을 배우던 나라가 다른 나라를 가르치는 나라로 바뀌면서 세계 각국의 의사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

“전문병원들에서 기술 전수와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양성화하고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겠습니다. 앞으로는 척추치료 분야에서 내시경수술을 포함한 최소침습수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인공지능(AI) 로봇수술이 도입되며 생체조직공학 성과가 속속 적용될 것인데, K스파인이 이 흐름을 긍정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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