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병원서 받는 치료, 그만한 가치가 있나요”

환자중심의료기술최적화사업단(PACEN) 허대석 단장 인터뷰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환자중심의료기술최적화연구사업단(PACEN) 허대석 단장은 “환자중심으로 의료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약보다 수십배 비싸다는 항암신약, 처방받는 게 좋을까?’ ‘건강보험 급여 적용은 안돼도 눈엔 더 좋다던데 최신 다초점 인공수정체로 할까?’ ‘1cm 갑상선암으로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 받지 않고 정기검진만 받아도 될까?’

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연구사업단(이하 페이슨·PACEN). 무려 16자나 되는 긴 이름의 사업단은 이런 ‘질문’들을 연구한다. 길어도 꿋꿋하게 풀어 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주체는 환자다. 지금 받는 이 치료, 정말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가? 정부가 환자 입장에서 물어보고 검증해준다.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이자 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허대석 단장은 “지난 수십년 간 의료현장은 기술 중심의 치료에 치중해왔지만, 이제는 환자 중심의 가치 치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페이슨은 이런 목표 아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아픈 사람 입장에서 쓸데없는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고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길잡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사업은 올해 2단계 사업에 돌입한다. 허 단장을 만나 지난 5년 간의 성과와 향후 3년의 계획을 들어봤다.

어느 치료법이 더 효과적? … “환자의 합리적 선택 도와”  

페이슨 사업은 인·허가를 받은 다양한 의료기술들을 비교한다. 환자에게 더 효과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검증하기 위해서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공포를 조장하거나 효능을 부풀리는 상술을 퇴출하는 것도 목표로 한다.

-앞서 환자 중심의 가치의료에 중점을 둔다고 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면?

“의료 행위나 기술을 보는 관점은 주체마다 다르다. 의사, 제약사, 환자, 정책입안자 등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가치’의 의미가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의료시스템을 이끌고 갈 원칙들은 영원히 만들 수 없다. 때문에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합의된 기준이 중요하다. 이 중심에는 환자를 두겠다는 것이다. 환자들의 입장에서 가치있는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구체적 예를 든다면?

“예를 들면 조기 위암 단계에서 배를 가르는 개복 수술과 내시경 수술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두 수술을 제대로 비교 분석한 자료가 있다면 환자는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해진다. 위암 수술 뒤 항암제 횟수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8회 사이클과 4회 사이클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한 자료가 있다면 환자는 재발방지 효과를 유지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항암요법에 대해 의료진과 좀 더 효율적으로 상담할 수 있다. 페이슨은 이 분석과 검증을 담당한다.”

-환자가 정보의 비대칭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겠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제약사나 의사 입장이 아니라 환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더 좋은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생성하여, 환자에게도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백내장 환자들 사례도 마찬가지다. 연구 결과 다초점 인공수정체나 단초점 인공수정체의 백내장교정의 효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런 정보가 없다면 환자는 병원에서 ‘더 좋다’고 권해주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분석을 병원이나 제약사가 주도해서 하지는 못한다. 공공기관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연구 대상이 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들인 것 같다.

“애매하고 검증이 필요한 문제들이 연구 대상이다. 환자는 효용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의학적 근거가 비교적 부족한 조치나 치료법 등을 검증할 수 있다. 반대로 의학적으로 근거는 충분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효용성이 그다지 클 것 같지 않은 치료법도 연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암 신약의 경우 분명 수개월 동안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격이 기존 약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격이 높은 경우가 많다. 페이슨 연구들은 이런 부분에서 검증 데이터를 내놓는다. 환자 입장에서 치료의 가성비를 따져볼 근거를 제공하는 셈이다.”

늙어가는 미래 한국… “돌봄 문제도 고려해야” 

-올해부터 시작되는 2단계 사업의 특징은?

“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과거 의무기록을 모아서 연구하는 후향 연구들 중 1단계에서 마무리된 과제들의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 투자가 많이 이뤄진 곳은 전향 연구다. 연구 시작 시점부터 5년 간의 전향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이제 2단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한 연구당 평균 16개 의료기관이 참여했다. 전국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은 다 여기 포함돼 있다. 국내 중요한 질환은 다 포함돼 있다고 보면 된다.  5년간 등록된 환자 수는 한 4만3000명 정도이고, 2단계까지 다 끝나면 7만4000명 정도 여기에 등록될 예정이다. 후속 연구까지 합치면 연구는 300개 정도 될  걸로 추정한다.”

-연구 결과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 서비스 개선이 되고, 의료진들은 이전보다 명확한 진료지침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다. 효율적 의료시스템, 합리적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를 이뤄내는 게 최종 목표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낭비를 막는 연구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의료시스템에서 가장 보완해야 할 점은?

“고령화 사회에서 환자 중심 의료에는 돌봄과 간병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78세 할아버지가 툭하면 폐렴으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기존 의료는 항생제 등 약처방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근본적 문제 해결을 못했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좀 더 깊게 개입해 보니 할아버지는 사실 1년 전 사별했다. 이후 술에 의지하다가 구토가 잦아지고, 이게 기도로 넘어가면서 걸핏하면 폐렴에 걸렸다. 결국 음주와 돌봄 문제를 해결해야 환자도 고치고 쓸 데 없는 의료자원 낭비도 막는 셈이다.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처럼 의료서비스와 복지제도를 환자 중심으로 융합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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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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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4-01-25 09:08:55

      환자들에게 도움되는 필요한 건강정보 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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