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이라고요? 동료 의사도 잘 모르던 장질환 지식 전파

[Voice of Academy 8- 학회열전] 대한장연구학회

대한장연구학회는 장질환에 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에는 염증성 장질환 환우들을 위한 사진전 ‘질환 그 이상을 넘어 일상으로-Beyond IBD’도 개최했다. 문정민·최창환 중앙대병원 교수, 김태일 세브란스병원 교수, 정성애 이대서울병원 교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가 환우들과 함께 사진전에 등장했다. [사진=대한장연구학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장(腸)질환 연구는 ‘변방의 학문’이었다. 위, 간 질환에 밀려 주목하는 이가 드물었다. 장염과 기생충 정도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어디에나 개척자들은 있게 마련. 시대의 변화를 먼저 읽은 사람들이 움직였다. 빠른 경제성장과 식생활의 서구화로 한국에서도 선진국병인 장질환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 의사들이 뭉쳤다.

1998년 7월 김진호(울산대), 김원호(연세대), 김효종(경희대), 양석균(울산대), 한동수 교수(한양대·가나다 순) 등은 대한장연구학회의 전신인 ‘염증성 장질환(IBD) 연구회’ 첫 예비모임을 열었다. 이후 대장연구회로 이름을 바꾼 모임은 4년 간 전국을 돌며 심포지엄, 워크숍, 집담회 등을 잇달아 열었고, 마침내 2002년 11월 대한장연구학회로 공식 출범했다.

선후배 의사 교류 활발…20년만에 아시아 선도

당시 경희대병원 서관 7층 구석방에서 시작한 대한장연구학회의 발기인은 3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창립 22주년을 맞는 학회는 1000명이 넘는 장질환 전문의가 평생 회원으로 활동하는 중견학회로 성장했다. 부산·울산·경남지회, 대구·경북지회, 호남지회, 대전·충청지회 등 4개 지회도 생겼다. 김태일 회장(세브란스 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외형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학회는 창의적 연구, 올바른 정보 전달, 진료의 질 향상 주도라는 설립 초기의 미션을 잊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성애 교수(이대서울병원 소화기내과)는 장연구학회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젊은이에 대한 환대를 꼽았다. 실제로 젊은 학자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적극적인 연구 지원이 학회의 빠른 성장을 이끈 동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 교수는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곳이 있다니, 이 곳에서는 정말 성장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젊은 의사들이 갖게 된다”고 소개했다.

2004년 시작된 ‘영 리더스 트레이닝 캠프’ 등 중견 의사와 젊은 의사가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멘토링 프로그램은 대한장연구학회 자부심 중 하나다.

‘창의적 연구’에  방점을 찍은 학회는 2006년부터 다양한 학술상과 논문상 등을 제정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결과도 풍성했다. 다기관 연구로 100여 편 이상 과학인용색인(SCIE) 논문을 제출했다. 2009년 4월 대한의학회에 가입한 장연구학회는 4년만인 2013년 대한의학회 우수학회상을 받은 뒤 3년 연속 수상을 했다. 2016년에는 최우수학회상까지 수상했고 2018년에 다시 우수학회상을 받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학회는 2012년 일본·중국·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아시아염증성장질환학회(AOCC)를 창립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국제학술대회(IMKASID)도 열고 있다. 2003년 창간된 학회지 «인테스티널 리서치(Intestinal Research)»는 2016년 AOCC의 공식 학술지로 지정되며 국제화에 성공했다.

학회 초창기 우리나라의 장질환 연구는 미국, 유럽, 일본에 수십 년 뒤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김 학회장은 “장 연구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아시아 선두 국가가 됐고, 이제 세계적으로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장연구회는 적극적 행동으로 주목받는다. 학회는 그동안 대장암검진 등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대국민 홍보에도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의료비 절감 등 정책 반영 위해 노력

건강보험 정책 의견서를 제출하고 의료정책포럼도 열고 있다. 장질환에 대한 의료정책과 보험제도를 주도하기 위해 학회에 의료정책 및 보험기획과제 연구비를 따로 마련했을 정도다.

차재명 교수(경희대)는 “대한장연구학회는 소화기 연관 학회 중 처음으로 국회 공청회를 열었다”며 “2016년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 대장암검진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거론된 내용은 실제 국가대장암 검진 사업의 정책 변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염증성 장질환 극복을 위한 의료정책 심포지엄’과 ‘인구 기반 대장내시경 선별검사: 우려와 기대’라는 주제로 국회공청회를 열었다.

장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한다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도 전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해피 바울(Happy Bowel)’ 캠페인과 ‘장날(장 건강의 날)’ 행사다. 2013년 시작된 이들 행사는 염증성 장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오랜 투병생활로 지친 환자들을 격려하는 자리다. 온라인에서도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양한 교육 자료를 배포한다. 화장실 찾기부터 복약 및 진료 일정을 관리할 수 있는 무료 앱 ‘IBD Friends’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학회가 홍보에 적극적인 것은 환자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반면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크론병 등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20년 전에는 25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환자가 7만4000명에 달한다. 그러나 환자들마저 병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염증성 장질환는 배변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일도 흔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관절질환, 건선 등 다른 질환을 함께 앓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무기력감, 우울감을 느끼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 2019년 대한장연구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의 56.3%는 ‘종종 무기력하다고 느낀다’, 44%는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게다가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1인당 연간 쓰는 치료비는 880만원에 달한다. 평생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경제적 부담도 상당한 셈이다.

2019년 4월부터 2년간 학회를 이끌었던 김주성 교수(서울대 병원 소화기내과)는 “염증성 장질환은 치료비 부담은 물론 전신에 동반되는 질환과 정신적인 고통 등으로 생활 전반에 걸친 어려움이 크다”며 “중증 희귀난치질환으로 산정특례 혜택을 받고 있지만, 의료비와 간접비 부담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최근 사회활동,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야 하는 젊은 환자가 늘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배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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