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형’은 못난이?…누가 만든 마케팅일까

박준규의 성형의 원리

얼굴형이 마음에 안 든다며 상담 오시는 분들이 요즘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제가 ‘땅콩형 얼굴’이라서요. ”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되묻습니다.
“땅콩형 얼굴이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왜 문제인가요?”매번 이렇게 묻는 이유는 ‘땅콩형 얼굴’이란 말이 특정한 상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서, 말하는 분들도 제각각 다른 의미로 쓰기 때문입니다.

흔히 옆이 패였다는 의미로 ‘땅콩형 얼굴’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홀쭉하고 긴 얼굴에 볼이 패인 느낌일 때 쓰는 분들도 있고, 얼굴이 넓고 짧으며 광대가 두드러진 경우를 칭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관자 부위가 꺼진 얼굴에서, 간혹 그냥 볼살이 많은 얼굴에서도 이런 표현을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실상 전혀 다른 상태의 얼굴들입니다.

그런데, ‘땅콩형 얼굴’ 이란 표현은 국내에서만 주로 쓰입니다. 예를 들어 (peanut-shaped)이란 영어로 검색해 보면 땅콩의 이미지들만 보입니다.

땅콩형 (peanut-shaped)란 말을 영어로 검색해 보면 말 대부분 땅콩의 사진들이 검색 결과로 뜹니다. 

그런데 한국어로 ‘땅콩형’이라 검색하면 죄다 얼굴형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한국어로 구글에서 땅콩형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들은 모두 얼굴에 관한 것입니다. 

‘땅콩형 얼굴’이란 말이 원래부터 널리 쓰이던 것도 아니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것은 더욱 아닙니다.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대략 2010년 이전에는 남방계와 북방계 얼굴형을 비교하기 위해 드물게 쓰일 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가인(남방계)은 땅콩형, 김연아(북방계)는 고구마형’ 같은 식입니다.

 

과거 언론에서 땅콩형 얼굴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정의되기 힘든 용어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 특히 국내에서만 쓰일 때, 그 원인은 ‘마케팅’에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땅콩형 얼굴’이란 말이 널리 쓰이며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 계기도 역시 ‘마케팅’으로 보입니다. 2011년 한 필러가 국내에 발매될 때 홍보를 위해 썼던 용어가 바로 ‘땅콩형 얼굴’ 이었습니다.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에서 안면지방이 점진적으로 손실되어, 볼이 해골처럼 패인 느낌을 주는 지방위축증(지방이영양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가 콜라겐을 생성해서 볼을 채우는 이 필러는 ‘지방위축증’을 보완하는 목적으로 처음 FDA 승인을 받고, 이후 미용 목적으로도 사용승인을 받았습니다.

HIV 연관 지방이영양증(lipodystrophy) 뺨과 눈 주위, 관자놀이에서 지방이 감소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출처 medscape 사진]
이렇게 지방이 위축되어 패인 볼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된 필러라는 특성 때문인지, 미용 목적으로 사용될 때도 패인 볼에 좋다는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땅콩형’이란 말을 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땅콩형 얼굴’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그 영향에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단 ‘나도 땅콩형이네’라고 생각할 한국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국인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남방계의 한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땅콩형’이 꼭 나쁜 얼굴형이라 보기도 힘듭니다. 전형적인 미인형에서 오히려 이런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당장, 위의 언급된 기사에 나오듯 한가인 씨의 얼굴도 ‘땅콩형’의 특성을 보여줍니다.

한가인의 얼굴형도 땅콩형의 특성을 갖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서양에선 오히려 이런 얼굴을 미인의 중요한 특성으로 보기도 합니다.

지젤 번천, 앤젤리나 졸리, 올리비아 핫세.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이영애 씨의 20대와 40대는 모두 아름답지만, 오히려 20대에 땅콩형의 느낌이 더 뚜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땅콩형 그 자체가 과연 문제인지 의문입니다.

이영애의 20대와 40대 시절 모습. [사진=SBS ‘아스팔트사나이’ 유튜브 영상 캡처(왼쪽) / 뉴스1(오른쪽)]
하지만, 나쁜 얼굴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성인데 ‘땅콩형 얼굴’이라고 부르는 순간 마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되기 쉽습니다. 마케팅에서 흔히 노리는 ‘프레이밍 효과’ 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땅콩형 얼굴’을 개선하라며 ‘필러 시술’을 권하는 정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권하지 않는 필러 시술 부위로 흔히 ‘볼’을 꼽습니다. 볼은 필러가 제 위치를 유지하기 힘들어, 시간이 지나며 흘러내리는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미용적으로도 볼 필러는 좋은 결과를 담보하기 힘듭니다. 옆볼을 채우면 자칫 얼굴이 ‘달덩이’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고 수많은 미용 클리닉들이 경쟁하는 필러 시장이다 보니, ‘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라며 광고하는 곳도 자주 눈에 띕니다. 한쪽에서는, 볼에 주입한 필러가 시간이 지나며 아래로 흘러내릴 수 있다고 주의를 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시술 직후에 찍은 사진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형국입니다.

수많은 ‘비(非)전문의’들까지 미용 클리닉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시술 가격은 떨어지고, 끊임없이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입니다. 심지어 ‘미용실보다 미용 클리닉의 시술이 더 싼’ 상태에 이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용 클리닉의 시술이 미용실보다 싸다고 해서, 미용실에 가는 것보다 더 쉽게 시술을 받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술에는 늘 비가역적인 면이 있고, 부작용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준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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