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싫은건가’… 독심술이 우울증을 부른다

[채규만의 마음이야기]

우울한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인지가 현실과 맞지 않고 왜곡된 경향을 보인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울증에 대한 인지적 입장

우울증에 관한 연구와 치료의 세계적인 대가인 에론 벡(Aron Beck)박사에 의하면 우울한 감정은 환경이나 사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사건을 경험할 때 그 당사자가 그 사건에 대한 태도, 해석, 및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이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수험생이 원하는 대학 시험에 낙방하였을 때, “이제 내 인생은 끝장이다.” 또는 “나는 가망성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절망감과 함께 우울감을 경험하지만, “이번 시험에 실패서 화는 나지만, 누구나 실패할 수 있기에 다음에 더 노력해서 잘하면 돼.”, 또는 “그 대학 말고 다른 대학에 진학해도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입시에 낙방해서 기분은 좋지 않지만,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지는 않는다.

에론 벡 박사에 의하면 우울한 사람은 1)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 2)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 3)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을 우울증의 부정적인 인지 3제라고 불렀다. 즉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해서 현재 미래에 부정적이라는 생각에 꽉 차 있는 사람들이고, 이러한 생각의 결과가 우울증이라는 열매로 자신에게 나타난다라고 보면 된다.

에론 벡 박사는 정신 분석가이었지만, 자신이 상담한 내담자와의 상담 내용을 내담자의 허락을 받아서 수집한 후에 이들의 사고 내용을 분석해 보았더니 우울한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인지가 현실과 맞지 않고 왜곡된 것을 발견하고, 우울증 환자들의 인지 왜곡 12가지 특징을 정리해서 발표했다.

예를 들면, 우울증 내담자들은 사건에 근거해서 결론을 내가기보다는 “임의적 추론”을 많이 한다. 공원을 거니는 남자가 꽃을 보고 있는 여자를 지나치면서, “저 여자는 나를 피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실제로는 여자는 꽃을 보고 있기에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안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임으로 추정해서 자신과 관련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여성 앞에 떳떳하지 못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사람들과 시선을 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맞추면 그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형편없다”라고 판단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독심술을 하기에 사람의 시선을 피한다. 이 경우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발생하고 있는 인지 왜곡을 알아차리고 수정해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에론 벡 박사는 모든 사람은 인지 과정에 “자동적인 사고”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이 자동적인 사고는 거의 무의식 수준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면, 본인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인사를 안 받고 지나가면 순간 기분이 안 좋다. 그러나 이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상대방이 나를 무시했기에 내 인사를 안 받고 지나쳤다”라고 자동적인 사고를 했기에 기분이 좋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저 사람이 나를 못 보았을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을 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또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누가 순간적으로 등 뒤에서 치거나 밀면 화가 날 수 있다. 이때 뒤를 돌아보니까 내 등을 친 사람이 시각장애인이었다면, 순간 화난 기분이 바뀌고, 시각장애인이 잘 지나가도록 자리를 비켜 줄 수 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순간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화를 낼 수도 있고, 선행을 할 수도 있다.

우울한 사람은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나를 싫어한다. 나는 형편없고 멍청하다.” 등의 자동적인 사고를 하기에 우울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심각한 경우에 자살까지 하는 것이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거의 무의식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알아차리고 수정해야 우울증이 향상된다.

이처럼 자신의 왜곡된 인지를 알아차리고 수정해서 우울감이라는 증상을 수정하는 것을 인지치료라고 하고, 이러한 인지치료를 우울증의 치료 기법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그 효과성도 수많은 임상 연구를 통해서 증명되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내 생각을 바꾸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우리 말 속담과 비슷하다.

인지 이론으로 우리의 감정에 대한 이해

모든 감정은 주어진다.
우울증을 포함한 모든 감정은 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달려 있다. 자신이 처한 역경이나 실패한 상황이라도, 이러한 상황 때문에 “나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절망과 무망감이 들지만, 이러한 상황을 내가 극복할 수 있다. 또는 나는 이것을 이길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다. 감정에 대한 주범은 상황이 아니고 상황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내 생각이 주범이다.

▸우울한 감정을 포함한 모든 감정은 정상적이다.
감정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반영해 주기에 정상적인 감정 반응이다. 시험을 앞두고, 시험에 떨어질까라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이러한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시험을 앞두고 “떨어지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히려 기뻐하고 히죽히죽 웃으면 사고와 감정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감정과 사고의 분열이 발생한 현상을 정신분열증이라고 한다. 현재는 사고와 감정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현상을 “조현병”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감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다.
우울한 사람들을 상대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우울한 사람들은 과거에 관련해서 “생각의 되새김질”을 한다고 한다. 과거에 발생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원망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이미 발생한 것에 대해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하는 생각에 빠진다고 한다. 즉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삶을 살고 있고, 그러한 반영해 주는 중요한 정보이다.

또한 불안한 사람들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불안한 사람들은 미래와 타인에 관련해서 부정적인 사고를 많이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실패하면 어쩌지?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큰일인데. 남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등의 미래에 관련해서 부정적인 사고를 많이 한다. 즉 불안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지나친 통제와 안전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있지만. 실제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적다. 불안한 사람들은 완벽주의를 수정해야 한다는 중요한 정보이다.

우울증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고를 바꾸어야지 증상만 바꾸려고 하면 땜질식 처방이다.
상담하다 보면 남성들은 우울하면 술로 푸는 경향이 있고, 여성은 음식으로 우울증을 풀려고 시도한다. 술과 음식은 그 순간적으로 우울증을 완화해 줄 수 있지만, 우울증의 원인인 사고를 수정하는 등의 원인치료가 아니고, 증상치료이기에 효과가 지속되지 못하고 오히려 알코올 중독과 비만 등의 부작용이 따라온다. 우울증 치료는 우울감과 연관이 있는 왜곡된 사고나 순간적인 자동적 사고를 알아차리고 수정을 해야 한다.

우울증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심리치료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인지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인지행동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다. 다음 주에는 우울증의 인지행동 치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겠다. 우울증은 극복할 수 있다.

    채규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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