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도 폭로… ‘가스라이팅’ 남발은 경계

계산된 정서 학대...용어 쉽게, 잘못 사용하는 행위 '경계'해야

가스라이팅은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의 한 형태로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심각한 행위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한 용어였던 ‘가스라이팅’이 최근에는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상당히 흔한 말이 됐다.

지난달에는 할리우드 배우 조나 힐의 전 여자친구가 그가 자신을 가스라이팅 했다며 대화 내용을 공개해 이슈가 됐다. 그가 프로 서퍼인 그녀의 사진이 선정적이라며 삭제를 요구하고, ‘다른 남자와 서핑하지 마라’, ‘불안정하게 살아온 여자와는 친구로 지내지 마라’ 등 그녀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느껴지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유명 배우와 전 여친 사이에 일어난 이 사건은 배우에 대한 비난과 함께 대체 무엇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불러야 하는가를 두고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다.

가스라이팅은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의 한 형태로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심각한 행위다. 하지만 최근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학적 용어가 유행처럼 쓰이면서 오용되는 경우도 많다고 미국 CNN이 최근 보도했다. 일단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단순한 비판, 요구와 달라…의도된 거짓말과 강압

미국 텍사스 주거재활센터 드리프트우드 리커버리(Driftwood Recovery) 소속의 바네사 케네디 심리학 전문가는 “갑자기 어떤 불편한 요구를 마주했다거나 혹은 ‘저는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데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가스라이팅은 아니다”라면서 “이는 실제 어떤 행동에 대한 의견을 내고 그에 맞게 바꾸라는 요구를 한 것 뿐으로 상대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가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달갑지 않은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당연하다는 듯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꺼내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 상대가 어떤 말을 반복하는지,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가스라이팅은 1938년 연극 ‘가스라이트’와 이를 바탕으로 1944년에 제작된 영화에서 유래한 용어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려 하는 행위를 말한다. 영화에서 남편은 자꾸만 아내가 미쳐가고 있고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내를 세뇌한다. 실제로 그녀는 점점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느낀다.

이처럼 보통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사람은 배려나 공감, 친절이 깔린 상호 존중적인 관계보다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통제하기를 원한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상대를 더욱 약하게 만들어 제압할 방법을 찾고 이로 인해 상대가 어떤 피해를 입는지는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해 상대에게 혼란을 주거나 자신의 말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자기가 맞고 상대는 틀렸다고 고집한다.

전문가들은 가스라이팅은 한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다른 한 사람을 불안정하고 잘못된 심리 상태로 만드는 고도로 계산적인 조작 행위라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피해자가 믿을 수 있을 만큼 밀접한 접촉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연인, 친구 혹은 가족이나 동료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스라이팅은 자신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비난, 책임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위로 의외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스라이팅 하는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신호

가스라이팅을 하는 이들은 자신의 업적이나 능력을 지나치게 포장하고 상대의 가족, 지인과의 사이를 이간질해 상대방이 오로지 자신만 믿고 의지하게 만든다. 만약 주변에 어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을 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음을 문득 깨달았다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강압적인 행동의 원인이 결국 본인 때문이라는 자기 의심이 싹텄다면 이 역시 가스라이팅의 결과일 수 있다. 운이 좋게 도움을 청할 지인이 남아 있다고 해도 궁지로 몰린 피해자는 오히려 자신이 대신 변명을 하며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자신이 애인이나 배우자, 직원, 친구 혹은 자녀로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가스라이팅을 계속 당하다 보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스로 행복을 찾고 변화를 꾀하는 힘이 줄어들 수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함이 커지고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보자. 주변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정서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유해한 관계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 모두 개인이 정하기에 달린 문제다. 그래서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누군가의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첫째다.

결심이 섰다면 행동에 옮겨 보자. 만약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과 마주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하다면 상대와 선을 긋고 자신이 느끼는 바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가스라이팅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상대의 어떤 행동과 말이 가스라이팅이며 이로 인해 자신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전달하면 좋다.

더 이상 일방적인 대화를 하고 싶지 않고 스스로 모든 상황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음을 알린 후 깔끔하게 관계를 끊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가 선을 긋거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면 함께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도 해볼 만하다. 떨어진 자존감과 상처받은 마음은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장소나 일을 찾고 칭찬해주는 사람을 만나 치유해 보자.

    김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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