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천재였지만…도박에 중독됐던 ‘요정 아가씨’

[허두영의 위대한 투병]

에이다는 열두살에 증기로 움직이는 비행기계를 디자인했다. 필명으로 시와 수필을 기고하고,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사진=저작권 소멸에 따른 퍼블릭도메인]
자유분방한 시인 아버지와 철두철미한 수학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딸은 어떤 성격과 어떤 재주를 가졌을까? 낭만파 최고시인인 아버지 조지 바이런은 제멋대로 사는 천하의 개망나니였고, 종교적으로 과학적으로 엄격한 어머니 안나 바이런은 전형적인 원칙론자였다. 어머니는 딸을 배자마자 이혼을 생각했고, 1815년 딸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영국을 훌쩍 떠나버렸다.

아버지의 ‘광기’가 유전될까 걱정한 어머니는 딸이 시를 읽지 못하게 감시하면서, 수학과 과학에 집중하도록 했다. 어머니의 기대를 뛰어넘어 딸은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면서 열두살엔 증기로 움직이는 비행기계를 디자인했다. 하지만 딸은 필명으로 시와 수필을 기고하고,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딸은 ‘시적인 과학자’(Poetical Scientist)가 되고 싶었다. 기계를 작동시켜 작곡 같은 창작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이 사교모임에 참석하려면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신분이 높아야 했다. 에이다 바이런은 이 3가지를 다 갖추고 있었다. 열일곱에 사교모임에 참석하면서 ‘요정아가씨’(Lady Fairy), ‘숫자의 마녀’(Enchantress of Numbers)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때 마이클 패러데이, 찰스 다윈, 찰스 디킨스 같은 유명인사들을 만난 에이다는 스무살에 결혼하면서 ‘러브레이스’(Lovelace)라는 성을 달았다.

1860년 찰스 배비지. [사진=위키피디아]
‘컴퓨터의 아버지’ 찰스 배비지를 만난 에이다는 ‘시적 과학’(Poetical Science)의 천재적인 영감을 발휘했다. 배비지의 부탁으로 계산기에 대한 논문을 번역하면서 에이다는 자신의 생각을 7가지로 정리해 노트로 달았다. 배비지의 계산기가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도록 지시하는 명령어 세트, 곧 ‘IF-THEN’으로 이뤄지는 ‘루프’(Loop)를 반복하는 최초의 알고리즘이다.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증기로 작동하는 계산기(Difference Engine) 개발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영국 정부는 배비지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당시 1만7천 파운드, 군함 2척을 만드는 엄청난 예산이 들어갔다. 에이다는 공동개발을 제안했지만, 배비지는 자신의 발명품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배비지를 위해, 마당발 에이다는 부유한 귀족들을 두루 만나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권했다.

수학으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을까? 투자금이 턱없이 부족하자 에이다는 도박에 눈을 돌렸다. 빌리거나 투자받은 돈으로, 경마장에서 승률을 계산하는 ‘도박시스템’을 만들었다. 남편 몰래 경마장을 드나들면서 엄청난 빚의 늪에 빠져들었다. 시댁 가문에 전해오는 유서깊은 다이아몬드까지 저당잡히기도 했다. 요즘 시세로 한 판에 5억원을 걸기도 하면서 모두 4000억원이 넘는 ‘초대형 사고’를 쳤다.

아버지의 그늘 때문일까, 빚의 함정 때문일까? 나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도박으로 집안을 말아먹은 여편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아편을 탐닉하며, 남자 관계도 복잡하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자궁암이 결정타를 날렸다. 1852년 쇠약한 에이다가 남편에게 뭔가를 고백하자,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석달 뒤, ‘IF-THEN’을 반복하던 그녀의 ‘루프’가 끊어졌다. 향년 36세.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왜 그토록 닮았을까? 파란만장한 삶으로 빚에 시달렸다. 죽은 나이도 같고, 죽은 경로도 비슷하다. 서른여섯에 피를 뽑는 엉터리 치료, 사혈(瀉血)로 죽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어머니에게 에이다는 아버지 곁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에게는 아버지의 극시 ‘카인’(Cain)에서 한 줄을 골랐다. ‘믿으라, 살아남을 것이다. 의심하라, 죽을 것이다’(Believe—and sink not! Doubt—and perish).

[도박중독] Gambling Disorder. 賭博中毒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도박으로 몸과 맘에 심각한 손상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충동조절장애의 하나인 ‘병적 도박’(Pathological Gambling)이라는 명칭의 정식 질환이다. 도박에 집착하여 조절 능력을 잃게 되며, 자포자기로 매달리면서 거짓말이나 불법 행위를 하게 된다. 본전만 찾으면 그만두겠다는 ‘보상심리’와 다음엔 딸 수 있다는 기대심리 때문에 끊지 못한다. 도박할 때 많이 나오는 도파민을 원하는 회로가 자극돼 전두엽과 중피질 경로가 망가지기 때문에 점점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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