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여성보다 수명 짧은 이유, Y염색체에 있다

노화로 인한 Y염색체 손실이 심장 손상과 사망률 높여

남성은 나이가 들면 세포에서 Y염색체도 잃기 시작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가 밝혀졌다. 비밀은 남성의 성염색체인 Y염색체에 숨어있었다. 14일(현지시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미국 버지니아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사이언스》와 미국 건강의학 웹진 ‘헬스 데이’가 보도한 내용이다

남성은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 근육, 무릎 연골만 빠지는 것이 아니다. 세포에서 Y염색체도 잃기 시작한다. 이를 ‘Y염색체 모자이크 손실’이라고 부른다.

세포가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서 서로 다른 유전형이 몸에 섞이게 되는 것을 ‘모자이크 현상(mosaicism)’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심화되는데 Y염색체는 더 이상 복제되지 않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마초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Y염색체는 X염색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71개의 유전자만 갖고 있다. 이렇게 유전자 자체가 작기 때문에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모자이크 현상이 축적되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Y염색체 손실은 1960년대 처음 발견될 때부터 지금까지 혈액 샘플에서 가장 흔하게 관측돼 왔다. 70세 노인의 약 40%, 93세 노인의 57%에서 최소한 일부 백혈구에서 Y염색체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노인의 경우 세포의 80% 이상에서 Y염색체가 부족한 현상이 발견된다. 과학자들은 이런 Y염색체 손실을 수명 단축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심장병, 암 같은 여러 질환과 연관시켜온 연구를 진행해왔으나 대부분 정황적 증거에 불과했다.

버지니아대 의대의 혈액혈관 생물학 센터장인 케네스 월시 교수 연구진의 이번 연구결과는 결정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Y염색체를 제거한 수컷 생쥐의 심장이 더 굳어져 그렇지 않은 생쥐보다 더 일찍 사망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38마리의 수컷 생쥐들에게 골수 이식을 시행했다. 그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사용해 이들 생쥐의 골수 세포에서 Y염색체를 삭제한 다음 골수가 제거된 다른 어린 수컷 생쥐에게 이를 주입했다. 이를 통해 어린 생쥐의 Y염색체가 직접 제거되진 않았지만 골수에서 생성되는 백혈구의 Y염색체가 49%~81% 손실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와 대조하기 위해 37마리의 대조군 생쥐도 골수 이식을 했지만 Y염색체는 유지했다.

연구진은 거의 2년에 걸쳐 두 그룹의 생쥐를 추적 관찰했다. Y염색체 부족 생쥐는 40%만이 이식 후 600일 동안 살아남은 반면 대조군 생쥐는 60%가 살아남았다.

Y염색체 부족 쥐들은 심장에 문제가 발생했다. 약 15개월 뒤 심장의 수축력은 거의 20% 감소했다. 심장의 결합조직이 딱딱해 지는 섬유증 증세도 뚜렷하게 타났다. 섬유증이 축적되면 심장을 굳어 혈액을 퍼 올리는 능력을 손상시킨다.

연구진이 수행한 골수 이식이 생쥐의 심장 근육 세포에서 Y염색체를 제거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골수에서 생성된 대식세포라는 백혈구가 심장에 들어가 다른 심장세포를 자극해 결합조직을 딱딱하게 만드는 섬유화를 촉진시켰다.

인간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구진은 50만 명의 건강데이터를 확보한 영국의 바이오 뱅크로부터 1만5000명 이상의 남성의 DNA와 생존 정보를 받아 분석했다. 백혈구의 40%에서 Y염색체 상실이 발생한 남성은 Y염색체가 더 풍부한 남성보다 순환계 질환으로 7년 내 사망할 확률이 31%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Y염색체 상실과 상관관계가 있는 사망 원인을 추적한 결과 심부전을 포함한 심혈관 질환이 관련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Y염색체 상실이 심장의 섬유화를 촉진시켜 심부전과 조기 사망을 초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월시 교수는 Y염색체 상실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원인이라고 밝혔다. 월시 교수는 “남녀 간 수명격차는 단순히 젊은 남성이 사고사하는 경우가 많아서가 아니라 유전적 차이가 더 크다”면서 “결과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생물학적으로 더 빨리 늙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Y염색체 손실과 관련한 대규모 연구를 이끌었던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존 페리 교수(유전학)는 “Y염색체 상실이 건강악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좋은 증거”라고 평가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유전학자인 미첼 마치엘라 박사도 이번 연구가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의 에이미 브래드쇼 교수(생물학)는 Y염색체가 부족한 쥐의 대식세포의 성향을 바꾸고 섬유증을 촉진한다는 발견은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n3100?adobe_mc=MCMID%3D21797716456144624440583682857926463414%7CMCORGID%3D242B6472541199F70A4C98A6%2540AdobeOrg%7CTS%3D1657841380)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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