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서 의사 수입? “누가 오겠습니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몇 해 전 동남아 국가에서 의사를 수입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의료계에서 나온 적이 있다.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의사 수가 갈수록 줄어들자 해외에서 의사를 데려올 수도 있다는 자조 섞인 넋두리였다.

하지만 이 말은 이내 “외국의 의사가 한국에 오겠습니까?”로 바뀌었다. 한국에 와봤자 ‘찬밥’ 대접 받을 게 뻔한데 경제적-사회적 위험을 감수하겠느냐는 현실적인 시각이었다. 동남아 국가도 의사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국내에서 환자의 생존에 꼭 필요한 필수의료는 비인기 진료과가 된지 오래다. 1970-80년대만 해도 외과, 산부인과는 의과대학 학생들 가운데 우등생만 지원하던 인기과였다. 하지만 지금은 매년 전공의 모집 때 미달이 속출하는 대표적인 기피과가 됐다. 반면에 ‘정·재·영’(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을 비롯해 안과, 피부과 등은 상한가를 누리고 있다.

전공의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것은 힘든 업무에 비해 경제적 만족도가 낮고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종합병원에 재직해도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데다 개원 전망 등 미래가 불투명하다. 젊은 의사들이 워라벨을 너무 추구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비인기과 기피의 핵심이다.

병원이 갈수록 경영논리를 앞세우고 있는 것도 필수의료를 선택하려는 의대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기고 있다. 병원도 물론 직원들 월급을 주기위해서는 수익을 내야 한다. 하지만 기업처럼 수익 일변도로 운영하는 일부 병원이 문제다. 경영 성적표가 나오면 필수의료 의사는 매번 곤혹스런 입장에 놓인다.

병원경영 입장에서 볼때 응급의학, 외과 수술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비수익 의료 서비스다. 의사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고난도 수술이 많아 몇 명의 의료진이 매달려야 한다. 투입 인력과 장비를 고려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분야다.

일부 병원 CEO는 의사의 초심을 잊고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필수의료 의료진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적이 우수한 의대생이 소신을 갖고 필수의료를 선택해도 이 같은 현실의 벽 앞에서 이내 좌절하고 만다.

필수의료 전공 의사는 종합병원-대학병원을 뛰쳐나와 개인 병원을 차려도 운영이 쉽지 않다. 고가의 의료장비에 의료진 몇 명을 두면 병원 경영이 불투명해진다. 여기에 의료사고까지 발생하면 폐업까지 각오해야 한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필수의료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은 비현실적인 의료수가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한 밤중에 찾아온 응급 환자를 밤새워 수술해도 건강보험을 거쳐 오는 병원 수익은 참담한 수준이다. 다른 진료과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 삶의 질을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액수다. 외국 외과의사에 한국행을 타진해 볼 수도 없는 민망한 수준이다.

정부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 의료수가를 인상해왔지만 아직도 현실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해외의 새로운 수술법을 익히면서 의료장비도 최신 기종을 구입해야 하는데 현행 의료수가로는 매월 병원직원 급여 주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일부 의료단체 등이 집단휴진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2022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 10년간 4천명의 의사를 추가 양성하는 방안을 발표한 데 대해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7일 전공의 파업, 14일 개원의 위주의 대한의사협회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의대 정원 확대는 지역 내 중증-필수 의료분야에 종사할 지역의사, 역학조사관-중증 외상 등 특수 전문분야 의사 육성이 골자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의료수가 차별화 없이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휴일을 반납하고 한 밤중에도 달려가야 하는 필수의료 의사에 대한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 지역의사에 대한 인센티브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수 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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