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독’ 간암 환자의 후회 “워라밸이 중요해요”

“내 몸을 살피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됩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간염이 있는데도 일을 핑계로 검진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지요. 피곤하면 바로 쉬어야 하는데, 밀린 업무는 꼭 끝내고 집에 갔어요. 마시면 안 되는 술도 가끔 먹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도 물랐어요.”(45세 남성, 간암 환자)

간암을 앓고 있는 이 모(무역업)씨는 대기업을 나와 무역업으로 꽤 돈을 번 케이스다. 큰 종합상사에서 일했던 그는 바이어의 권유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전자제품을 다뤘던 그는 돈 되는 아이템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동남아에서 남미, 아프리카까지 해외 출장도 잦았다.

그가 간암에 걸리자 믿을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술은 했지만 자주 과음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씨는 B형 간염바이러스 보균자였다. 간암은 술보다는 간염바이러스 때문에 생긴다.

우리나라 간암 환자의 85% 가량이 간염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다. 이들 중 75% 정도가 B형 간염바이러스, 10% 가량이 C형 간염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가장 확실한 간암 예방법은 이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B형 간염바이러스는 예방접종으로 간염을 막고 간암 걱정을 덜 수 있다.

이미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반드시 주기적으로 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한다. 간암은 어느 정도 진행이 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하지 않으니 이 씨처럼 일에 파묻힌 사람은 ‘설마’하다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 증상이 생겨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완치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 씨는 심한 피로감이나 소화불량을 간혹 겪었다. 체중이 빠지는 것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가벼운 증상으로 여겼다. 오른쪽 윗배에 통증이 오고 복부 팽만감이 생기자, 이 씨는 자신이 간염바이러스 보균자임을 깨달았다.

안상훈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소화기내과)는 “만성 간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자각증세가 없다고 해서, 이를 방치하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 간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알고 적절히 대처하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B형과 C형 만성 간염 환자들은 감염 정도가 심하고 오래될수록 간경변증의 발생이 늘고, 그에 따라 간암 발생도 증가한다. 만성 간염을 항바이러스제 등으로 적절히 치료해 더 이상의 진행을 막아야 한다. C형 간염바이러스 예방접종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감염자의 경우 최근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가 나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씨는 “일과 휴식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한데, 일만 생기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성격이 암을 불러온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는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일을 하면서도 취미 생활 등을 통해 건강을 챙기는 시대다. 자신의 몸을 살피려면 삶의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지방간을 가벼운 질환으로 여기는 것도 피해야 한다. 지방간이 진행된 형태인 지방간염은 간경변증뿐만 아니라 간암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을 하지 않는 사람이 걸리는 비알코올 지방간은 당뇨, 고지혈증 등이 동시에 생기는 대사증후군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40세 이상 남녀 중 간경변증, B형 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 양성, C형 간염바이러스 항체 양성인 사람, 이들 두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만성 간질환 환자 등은 6개월에 한 차례씩 복부 초음파검사와 혈청 속 알파태아단백을 측정하는 혈액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간에 좋다며 검증되지 않은 약초를 함부로 먹거나 민간요법은 오히려 간 건강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미 간염이나 간경변증과 같은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은 의사와 상담하며 간암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사진=magicmine/gettyimagesbank]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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