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 건강보험 적용 놓고 약사, 한의사, 의사단체 갈등

한약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2013년 10월부터 3년간 진행

한약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놓고 약사, 한의사, 의사단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는 치료용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한시적 시범사업’과 ‘고운맘카드의 한방의료기관까지 확대적용’ 등을 의결했다.

‘치료용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한시적 시범사업’은 2013년 10월부터 3년간 진행되며, 노인과 여성 등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질환과 수족냉증 등 노인-여성 관련 대표상병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다.이와는 별도로 대표상병에 해당하는 일부 100처방은 이해 관계자 협의 결과에 따라 선별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당시 대한한의사협회는 “지금까지 첩약을 건강보험 급여화 하자는 국민들의 요구가 많았으나, 현재 전혀 급여로 인정되지 않고 있어 한방의료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건정심의 이번 결정으로 국민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양질의 한방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건정심의 발표 이후 한-양방 할 것 없이 의약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럽다.

첫 포문은 의사협회가 열었다. 의협내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건정심의 발표 다음날인 26일 즉각 “건정심에서 한약 처방에 2000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여하기로 한 결정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최근 간질약 투여 파동, 발암물질 검출, 중금속, 농약 문제가 끊이지 않는 한약에 2000억 원 이상의 보험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B형간염 환자와 발달 장애어린이 치료 보다 더 중요하느냐”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국의사총연합도 한약 첩약 급여화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의총은 성명서를 통해 한약 첩약 급여화로 한약사와 약사가 이익을 볼 것이라면서 의약분업 당시 반대 투쟁을 벌였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했던 의사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의총은 성명서에서 “의약분업 제도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직역이 약사”라면서 “이는 의약분업이 시행된 2000년에 전체 요양급여비용 중 약국의 점유율이 9.2%에서 2011년에는 26.2%로 급증한 것으로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의총은 또한 “이와 반대로 의원급 의료기관은 2000년에는 35.5%에서 2011년엔 21.6%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면서 “이 때문에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의 폐업률이 6%를 넘어섰으며 폐업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사상태에 놓인 의원들이 많은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한의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이어졌다. 한의사평회원협의회의 회원 100여 명은 의사협회의 성명발표가 있은 지 이틀 뒤인 28일, 기습적으로 한의사협회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이번 협의가 한의계 전체의 동의를 얻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대한한의사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현행법에서 한약을 조제해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은 한의사와 한약사, 약사(한약조제 자격증을 딴 약사) 등인데도 3가지 직종 모두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사업은 한약사와 한약조제약사들의 진단권을 인정한 것”이라며 이 사업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한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한의협은 “100 처방 조제를 하는 약사들은 진단이 아닌, 환자가 원하는 약을 판매하는 것”이므로 “진단을 할 수 없는 약사가 판매하는 한약제제는 보험수가를 적용할 수 없다”며 비대위의 입장을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도 반박에 나섰다. 대한약사회는 2일 한의계가 약사 직능을 폄훼하고 편협한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한방분업을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약사회는 이날 성명서에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는 한약의 특수성과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일부 첩약에 대해 보험급여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의결했다”면서 “이는 환자의 선택권을 높이는 한편, 보험제도를 통해 첩약의 표준화와 과학화를 촉진하겠다는 정책적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의계가 건정심의 결정에 반발하고, 오히려 한약조제 약사의 급여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제도 도입의 취지를 호도해 자신들의 이익만 극대화하겠다는 획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이번 건정심의 결정은 서양의학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약의 특성을 반영해 국민에게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이며, 이는 또한 보험제도를 통해 급여의 객관화 기틀을 마련하고 한방의 급여 범위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정책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대한약사회는 “이러한 전후 과정을 알면서도 이를 부정하고 오로지 한약조제 자격을 가진 약사의 첩약 급여만 문제로 삼는 것은 한방의료에 대한 국민의 염원은 무시하고 자신의 기득권만을 인정하겠다는 이기주의에 불과할 뿐”이라면서 “한약조제 자격을 가진 약사의 첩약 급여를 반대하고자 한다면, 한의사협회는 즉각 한방분업 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진철 기자 jcpar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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