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20년 만에 빈대 발견됐다고?

학회 논문에 언론 ‘떠들썩’…소독업체 “무슨 소리?”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소리 소문 없이 ‘해외 빈대’가 유입돼 번지고 있는 가운데 18일

언론사들이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20년 동안 국내에서 사라졌던 빈대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앞 다퉈 보도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문제의 발단은 2008년 12월에 ‘대한기생충학회지’에 발표된 연세대의대 기생충학교실

용태순 교수의 논문이 연합뉴스에 보도되면서부터다. 신문, 방송들이 ‘20년 만의

발견’을 기정사실화해서 보도했고 포털사이트마다 주요뉴스로 취급했다.

그러나 방역업체 관계자들은 “빈대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이고 3, 4년

전부터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을 중심으로 빈대가 늘고 있어 골치”라고 말했다.

용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07년 12월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에 30대 여성이

팔 다리가 붉게 변하면서 가려움증을 호소하며 찾아왔다. 이 여성은 병원에 오기

전 이틀 전 자신의 방에서 잡은 곤충이라며 사체까지 갖고 와 의료진에게 보여줬다.

병원 연구진이 현미경을 통해 몸길이 4mm 정도의 곤충을 관찰했더니 연한 붉은

갈색에 날개 없는 납작한 모습이 빈대였다.

이 여성뿐 아니라 한 이웃도 온몸 20군데가 빈대에 물렸다. 연구진은 이 여성이

미국의 뉴저지 주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9개월 전 한국에 들어와 살았다는데 초점을

뒀다. 미국 뉴욕 일대는 2006년 ‘빈대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빈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이 여성이 뉴욕시 옆의 뉴저지에서 옮겨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연구진은 해당 여성의 방을 비롯해 건물 내 다른 방에서도 수없이 많은 죽은 빈대와

빈대의 유충 등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번식력이 왕성한 빈대가 이미 건물 전체로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빈대는 일반적으로 갈색 빛을 띠고, 몸길이는 6.5∼9㎜에 이른다. 집 안에 살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긴 주둥이로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 먹는다. 빈대에 물리면

가려움증이나 붉은 점들만 생길뿐 우려할만한 질환이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놔두면 며칠 이내에 사라진다.

용 교수는 “1960~7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위생상태가 크게 향상되면서 더럽고

위생이 불량한 곳에서 서식하는 빈대를 거의 보기 힘들게 됐다”며 “서울에서 20년

만에 빈대가 발견됐다고 한 설명은 빈대 발견 사례에 대해 공신력 있는 학회지, 국가

보고 등이 그간 전무했던 점을 전제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빈대가 20년 만에 발견됐다는 보도에 해충 전문가와 방역업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박승철 교수는 “빈대가 왜 사라졌겠느냐”고

반문하며 “학계에 빈대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사라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다.

방역업체 한국쌔니테이션 이명준 대표는 “최근 서울 경기 지역 7~8가구에서 빈대

방제작업을 했다”며 “대부분 미국 뉴욕지역과 유럽, 호주, 캐나다, 동남아 등을

여행한 사람이 옮겨온다”며 말했다. 그는 “빈대는 방역을 해도 잘 죽지 않아 관련업체에서도

골칫덩어리로 여긴다”고 말했다.

해충클리닉 손창식 부장 또한 “가정집을 대상으로 2~3년 전부터 빈대 방제작업을

해왔다”며 “빈대 방제 작업이 한 달에 1,2건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방제작업을

하는데 있어 빈대, 이, 벼룩 등을 함께 퇴치하는 방역용품을 사용하고 있다”며 “빈대가

개미처럼 눈에 잘 띄는 해충이 아니라서 한눈에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빈대의 실체를

분명히 확인하고  있으며, 방제작업을 요청한 가정 중에는 빈대에 물린 증상들을

호소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원광보건대 기생충학과 김유현 박사는 “국내에서는 위생상태가 좋아지면서 빈대로

인한 피해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면서 “이때 해외에서 빈대가 유입된 사례가

학회지에 발표돼 다시 빈대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은지 기자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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