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흉부외과 수술 1호는 이완용

이재명 의사 칼에 찔렸지만 일 의사가 살려내

한국 최초로 흉부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는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는 이완용이 칼에 찔려 서울대병원 전신인 대한의원에서

치료 받았다는 기록이 담긴 ‘상해 감정서’를 발견했다고 18일 밝혔다. 김 교수가

발견한 감정서는 모두 5장으로 당시 이완용의 증세와 치료 과정이 한문과 일본어로

상세히 기록돼 있다.

당시 내각총리대신이던 이완용은 1909년 12월 22일 경성 천주교회당 앞을 지나던

중,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의 칼에 왼쪽 어깨와 오른쪽 등을 찔려 서울대병원 전신인

대한의원에 실려갔다.

당시 이완용의 치료 책임자는 대한의원 원장이었던 기쿠치, 수술집도의는 같은

병원 스즈키 고노스케로 추정됐다. 이완용은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치료와 수술을

받은 뒤 1910년 2월 14일 완쾌돼 퇴원했다.

스즈키 고노스케가 기록한 상해 감정서에는 상처의 위치와 깊이, 흉기의 종류,

상처 경과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감정서 분석 결과 이완용의 주 병명은 ‘늑간동맥 절단’이고 부 병명은 ‘혈기흉’이었다고

김 교수는 공개했다.

늑간은 갈비뼈 사이를 이르는 말이다. 외상에 의해 갈비뼈 아래를 지나는 동맥이

절단되면 출혈이 심해 몸 속 장기나 외부로 많은 피를 쏟게 된다.

김 교수는 “폐 주위에 피가 고인 혈기흉이 부 병명이지만 직접적인 폐 손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의술로는 폐 손상을 치료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흉 발생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폐가 찢어져 폐 속에 외부 공기가

들어가거나 피가 고이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폐를 둘러싼 근육인 흉막 등이 찢어지면서 폐 주위에 외부 공기가

들어가거나 피가 고여 발생한다. 감정서에는 직접적인 폐 손상과 그에 대한 처치

기록이 없는 만큼 이완용은 두 번째 원인으로 발생한 기흉에 대해 치료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기록을 발견하고 분석한 김 교수는 “흉부외과 수술 제1호 환자가 이완용이라는

사실 외에 당시 흉부외과 의술 수준에도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1909년은 한국에 서양 의술이 소개된 지 불과 20년 남짓 된 시점이었는데

그 수준은 매우 뛰어났다”며 “그 증거는 ‘주사로 700cc의 핏물을 뽑았다’는 기록에

있다”고 말했다.

폐 주위에 피가 고이면 수술로 고인 피를 완전히 제거해 줘야 한다. 지금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당시 의술 및 장비로는 완벽한 제거가 어려워 수술을 해도 일부

피 찌꺼기를 남긴 채 수술을 마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00년 전에 의사의 진단만으로 핏물이 고인 부위를 정확히 짚고,

주사 바늘을 꽂아 핏물을 빼냈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11월6일 열린 대한흉부외과 추계학술대회에서 ‘흉부외과 변천사’라는

주제로 이 내용을 발표했다.

 

김미영 기자 hahaha@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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