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나이팅게일

[이성주의 건강편지] 강인한 나이팅게일


평판보다 소명을 소중하게 여긴 여걸

1910년 오늘(8월 13일), ‘백의(白衣)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관을 운반할 두 명 외엔 아무도 없이 검소하게 나를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하늘로 떠났습니다.

나이팅게일은 귀족의 딸로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소명(召命)에 따라 힘들지만 보람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1820년 나이팅게일은 영국인 부모가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를 여행할 때 태어나 플로렌스란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가 간호사의 길을 가겠다고 하자 부모는 펄쩍 뛰었습니다. 당시 간호사는 군인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나이팅게일이 영국 병원을 개혁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합니다.

나이팅게일은 1854년 유럽 열강 사이에서 벌어진 ‘크림전쟁’의 참상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간호사 38명을 데리고 이스탄불로 향합니다. 그는 장교들의 멸시를 이겨내고 철저한 기록과 통계수치를 들이대며 병원을 개혁, 5개월 만에 병원 사망률을 42%에서 2%로 줄입니다.

나이팅게일은 병원의 최고책임자가 무책임하게 본국에 “병원은 잘 운영되고 물품도 충분하다”고 보고하자, 영국의 지인을 통해 현장의 열악한 실태를 폭로합니다. 당시 군 당국은 나이팅게일에 대해 온갖 음해와 모략을 펼쳤습니다. 나이팅게일이 “이곳 관리들은 하나같이 가능하다면 나를 잔 다르크처럼 불태워 죽이고 싶어 한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나이팅게일은 ‘등불을 든 천사’로 불리며 영국의 영웅이 됐지만, 혼자서 몰래 귀국했습니다. 그녀는 전쟁의 참상을 겪고 50년 동안 환자로 지내면서도 빅토리아여왕에게 병원개혁안을 건의하고 나이팅게일 간호사양성소를 창설하며 200여권의 저서를 발간합니다.
그녀는 평판과 웅변보다 행동을 중시했습니다. 그는 “연극의 합창단처럼 2분마다 ‘전진하라, 전진하라’고 크게 노래 부르며 한 걸음도 내딛지 않는 인간만은 되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하늘로 떠난 날에 저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다 사람의 평판에 더 신경 쓰고 있지 않은가. 늘 주위 사람에게 “영화에서 주위의 오해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하는 주인공을 본 적이 있나”라고 말하면서 나 스스로는 핑계와 변명에 기대며 살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한 걸음도 내딛지 않은 채, 공허한 목소리만 높이고 있지는 않은가.’


나이팅게일 밑줄 긋기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러면 세상이 너를 반겨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할까?’라든지, 세상의 평판이라든지, 외부에서 들려오는 말 등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 현인이 지적한 것처럼 외부의 목소리에 집착한 사람 중에는 뛰어난 일이나 유용한 일을 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감정은 말로써 자신을 소진하고 있다. 그 감정들은 좋은 결과를 낳을 행동으로 승화돼야 한다.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종교, 철학이 아니라)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했을 뿐이다.(크림전쟁이 끝나고 환영인파를 피해 몰래 고향에 온 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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