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당당하게, 남성은 센스있게…피임하라

남성우선 국가 대부분 저출산 아이러니

변변한 남친도 없는 기자가 피임을 주제로 한 칼럼을 쓰기 위해 모니터를 여니

글이 잘 써지지 않을 것 같은 직감이 든다. 아니나다를까 점심 때까지는 출고하겠다는

데스크와의 약속을 어기고 오후 3시를 넘기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꼭 써야 하겠다. 둘이 좋아 사랑을 나누면서도 왜 피임은 여성이

챙겨야한다는 몰상식이 아직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지 좀 따져묻고 싶다. 남친은 여친을

끌어 안고 싶다면 먼저 동네 한바퀴를 숨가쁘게 돌더라도 피임을 챙겨야 하는 이유를

말해두고 싶다. 어쨌든 말만한 처녀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는 의지가 지금 넘치고

있다.

둘째 아이를 가진 어떤 여성이 인공유산을 요구하며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는

난감해하며 “애를 하나 더 낳으셔야죠”라고 받았다. 그녀에게서 돌아온 말. “남편

꼴뵈기 싫어서 이혼하려고 하는데 애는 무슨 애예요?”였다고 한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하나임을 확인하면서 엄마의 몸에 생겨난 숭고한 생명이 부부간 핑퐁 대상으로

전락한 순간이다.

아기 양육의 권리와 책임은 법에만 순서를 정해 놨을 뿐 남녀 공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행태와 사고방식에 얼마나 질렸으면 이

여성은 둘째를 가졌는데 인공유산을 하려 했을까. 물론 이런 이유를 들어 인공유산을

하는 것은 종교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허용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안되는 것도 없는 한국사회 아닌가. 의료 기자생활 2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인공중절 수술할 곳을 찾지 못해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례는 접한 적이

없다.

주제를 너무 넓히면 감당할 수 없으니 피임으로 좁혀야 한다. 아이 낳고 기르는

일을 여성의 디폴트 값으로 여기는 마초들이 도처에 흔하다. 사귀다가 혹시나 덜컥

애가 생기면 여성만 끙끙 앓는다. 삐삐시대나 스마트폰시대나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은 아직 ‘유죄’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도록 원인을 제공하는 쪽은 남성이다. 그러니 남성은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아이를 가진다는 것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더욱이 피임을 자기

책임으로 끌어안는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 생각해보자.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콘돔사러

돌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여성이 더 편하겠는지.

최근 한국모자보건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남성이 성적으로 더 충동적이고

한번 욕구에 사로잡히면 기어이 일을 저지르면서도 피임을 챙기는 것은 애꿎은 여성의

몫”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남녀가 성관계를 하려면, 남성이 끝까지 콘돔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9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남성우선의

문화권 국가들이 대부분 저출산 국가다. 한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출산율은 OECD

평균인 1.65명에 한참 못 미치거나 언저리에 있다.

이 통계가 감추고 있는 비극성은 단순히 평균치 이하냐 이상이냐에 있지 않다.

출산율이 낮아진 이유가 사회구성원들이 피임을 완벽히 해서 나오는 수치가 아닌

것이다. 임신은 활발히 이뤄지는데 사회적인 모순 때문에 인공유산이 그늘 속에서

그만큼 횡행하는 것이다.

2005년 고려대 안산병원 산부인과 김해중 교수팀이 발표한 인공임신중절수술 실태조사

결과를 보자. 당시 연간 34만2,000여건의 인공임신중절이 이뤄지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출산아수가 연간 약 40만~50만 명에 이른다. 부모 잘못만나 태어나지 못한

아이와 운좋게 세상의 빛을 본 아이의 비율이 거의 1대 1인 것이다.

임신중절수술 사유로 기혼여성은 70%가 ‘자녀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혼여성의 92%는 ‘미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05년 인기를 끈 MBC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진헌(현빈)의 집에서 자게

된 삼순(김선아)은 콘돔 없이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진헌을 끝까지 막으며 콘돔을

안 사오면 함께 자지 않겠다고 버틴다. 진헌은 약국부터 편의점까지 온 동네를 돌면서

겨우겨우 간절히 구하던 물건을 손에 넣는다. 돌아왔을 때 삼순은 잠들어 있다.

피임은 남녀가 함께 살펴야 하는 문제다. 여성은 피임약을 먹고 남성은 콘돔을

사용해야 이상적인 피임을 할 수 있다. 피임약만 먹으면 피임은 거의 확실하지만

성병이 옮을 수 있다. 콘돔은 성병을 막을 수 있지만 피임 실패율이 15%로 다소 높다.

 

여성은 삼순이처럼 피임에 대해 당당하게 주장하고 남성의 제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훈남은 별종이 아니다. 여친이나 아내가 완강하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동네

한바퀴’를 돌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훈남 되겠다.

 

박양명 기자 toan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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