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대재앙 스페인독감의 판박이?

올 가을에 되돌아올 때 맹위 가능성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일까, 아니면 폭풍전야(暴風前夜)일까?

멕시코를 휩쓴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더위를 먹었는지 국내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유전자 분석 결과 신종플루 바이러스는 독성이 약한

바이러스인 듯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신종플루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없지만

미국과 유럽은 다르다. 미국에서 세 번째 희생자를 냈고 코스타리카, 캐나다 등에도

사망자가 생겼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신종플루 공포 때문에 가벼운 키스나 악수도

꺼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 방역당국도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우선 신종플루가 20세기 대재앙이라고

불리는 스페인독감과 공통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스페인독감은 1918년 세계

각국을 강타, 7000만~1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제1차 세게대전 사망자의 갑절이고

유럽인구의 3분의1을 죽인 것이다. 특히 스페인독감도 처음에는 위력이 약했다가

다시 되돌아왔을 때 가공할 모습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방역당국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신종플루의 정식 명칭은 ‘2009 인플루엔자A(H1N1)’.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도

인플루엔자A(H1N1)다. 이번 신종플루는 스페인독감의 변종으로 사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종플루와 스페인독감이 가장 비슷한 부분은 젊은층의 사망률이 높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플루엔자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어린이와 노인의 사망률이 높다. 최근

멕시코 보건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15~54세가 신종플루로 인한 폐렴으로 병원 진료를

받는 사례가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에는 사망자의 70% 이상이

25~35세 사이의 건장한 젊은이들이었다.

박승철 신종인플루엔자대책위원장은  “20~40대 희생자가 많다는 것이 이번

신종플루 사태의 미스터리”라며 “젊은층이 학교 등에서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더 빨리 전염이 될 것이라는 추측도 해 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신종플루로 명칭이 바뀌기 전 멕시코독감이라고 불린 것도 지역 이름이 붙은 스페인독감과

유사하다. 그런데 멕시코독감과 스페인독감은 둘 다 이 지역에서 바이러스가 처음

창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같다.

신종플루가 지난달 멕시코에서 처음 인식됐지만 퍼지기 시작된 때는 지난해 가을이다.

AFP통신은 지난 2일 미 질병예방통제센터(CDC)의 스콧 브라이언 대변인이 “미국의

사례를 조사하면서 더 빠른 사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면서 미국이 신종플루의

진앙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스페인독감은 정확히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고 1918년

초여름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국 군인에게서 처음 보고됐다. 같은 해 8월 첫 사망자가

나왔고 이  때부터 급속하게 번지면서 치명적인 독감으로 발전했다. 당시 세계대전

중이어서 각국이 검열을 했지만 중립국가인 스페인은 보도통제를 하지 않아 객관적

뉴스가 스페인에서만 나와 병명이 스페인독감으로 정해졌다.

또 병 유행이 북반구의 따뜻한 계절에 시작됐다는 점도 같다. 신종플루의 유행은

지난달 멕시코에서 시작됐다. 이 시기 기온은 11~26도로 영국 런던의 여름 평균 기온보다도

높다. 전문가들은 이 바이러스가 다른 곳에 계속 확산되면 오는 7월에는 10억 명

이상이 감염될 것으로 예상했다.

스페인독감 역시 북반부가 봄과 여름이었던 때 가벼운 유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남반구로 갔다가 북반구가 겨울이 된 후 다시 돌아왔을 때는 치명적이었다. 신종플루도

첫 유행인 지금은 독성이 약하지만 스페인독감처럼 다시 돌아온다면 더 강력해진

변종 바이러스로 무장해 인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보건당국이 신종플루 소강

상태인 지금도 안심을 하지 않는 이유다.

신종플루와 스페인독감은 차이점도 있다. 스페인독감 유행 당시에는 치료제와

백신이 없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신종플루에 치료에

효과가 있는 타미플루와 릴렌자라는 항바이러스제가 있다. 또한 예방 백신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스페인독감 유행 시기는 제 1차 세계대전시기와 같아 젊은층이

집단으로 몰려 있었고 위생상태가 열악한 상황이어서 피해가 더 컸다.

전문가들은 신종플루는 스페인독감과 유사한 점이 많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파괴력은

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인독감을 경험한 뒤 지식을 많이 축적했고 치료와 예방

약물도 있기 때문에 한 세기 전 대유행보다 월등히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자문기구인 ‘공중보건 위기대비 대응 자문위원회’의 방지환

교수(국립의료원 감염센터)는 “비행기도 없었던 시절에 스페인독감이 전 세계에

동시에 퍼졌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 간 전염이 잘 되고 변이가 잘 됐다는 것”이라며

“스페인독감과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변종인 신종플루는 어떻게 변이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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