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적 가스라이팅'에 치료 기회 잃는 여성들 (연구)
의료기관과 가족에게 장기간 고군분투
심각하고 만성적인 신체나 정신 질병을 가진 일부 여성들이 의사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지원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샴페인 캠퍼스) 연구팀에 따르면 암, 자궁내막증, 다발성 경화증, 크론병 등 심각한 질병을 지닌 여성들이 이로 인한 우울증과 불안증 등 정신 문제까지 겹쳐 진단 및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구팀은 미국 각지의 여성 환자 36명을 심층 인터뷰 했다. 이들은 의사나 지인들이 자신의 건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암묵적 편견과 차별에 고통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참여자들은 21- 70세 사이 백인이 대부분이었다.
제1저자 샤리 톰슨 교수(커뮤니케이션)는 “인터뷰 대부분 여성은 수년 간 건강 문제와 고통을 안고 살아왔다”면서 “이들 중 대부분이 정신 및 생식 건강 문제가 청소년 무렵 시작됐으나 수십 년간 방치되거나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건강 상 문제 때문에 개인적으로 거부당하거나 때로 학대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부모가 자녀의 건강 문제에 회의적이거나, 가족의 보수적 가치관이나 경제적 결핍으로 인해 성인이 되거나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필요한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없었다.
연구팀은 여성의 건강 문제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의사소통권 박탈’(communicative disenfranchisement)이라고 불렀다. 이는 개인의 건강과 신체에 대한 지식을 부정하고, 이들의 증상과 경험, 인종과 성적 지향과 같은 정체성을 존재하지 않거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코네티컷대 엘리자베스 힌츠 교수(커뮤니케이션)는 다중통증증후군 환자의 경험을 연구하면서 ‘의사소통권 박탈’ 이론을 개발했다.
그는 “의료적 가스라이팅으로도 알려진 의사소통권 박탈은 의사는 물론 보험 가입 상태 등 경제적 요인이 얽혀 지속적으로 고립되고 고통받는 굴욕적인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은 의료 제공자가 인종이나 경제적 혹은 보험 문제 때문에 자신들이 고통을 받아들이지 앟는다고 생각했다. 의사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에 대해 수치심을 주거나 꾸짖었고, 신체와 체중에 대해 모욕적 발언을 했고, 이들의 건강 상태를 ‘자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개인적 실패’ 탓으로 돌렸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을 찾기까지 여러 명의 의사를 전전했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부정적 반응으로 인해 여성들은 종종 건강 관리에서 소외되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증상을 스스로 관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18, 19세기에 여성의 건강은 종종 논란 여지가 있는 정신건강 장애인 ‘히스테리’로 진단됐다. 당시 의사들이 여성의 연약하고 감정적인 성격 때문에 병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1980년 미국 정신의학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히스테리'는 사라졌다.
톰슨 교수는 “진단을 내리거나 확신 편향을 갖기 전에 여성의 말을 수용해야 한다 ”면서 “여성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의사가 말하는 것 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연구는 ‘헬스 커뮤니케이션’에 발표됐다. 원제는 ‘Women’s experiences of health-related communicative disenfranch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