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전문가의 실패와 방역기획관

[Dr 곽경훈의 세상보기]

[사진=Kat J Weiss/gettyimagesbank]
환자가 응급실을 찾으면 입구에서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를 측정하고 가장 심하게 호소하는 증상을 확인하여 중증도를 감별한다. 그런 다음 문진과 이학적 검사를 시행한다. 그러면 그때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가 걸렸을 가능성이 큰 병의 목록을 작성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씩 감별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병을 찾는 것을 단순히 '루틴'에 따라 온갖 검사를 처방하는 기계적인 과정으로 생각하고 몇몇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허준 같은 명의처럼 그저 환자의 안색을 살피는 것만으로 질환을 쪽집게처럼 잡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범인을 찾는 수사와 비슷하다.

형사 혹은 탐정이 현장을 둘러보며 주변을 탐문하고 다양한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얻은 단서를 모아 용의자의 명단을 작성하여 한명씩 추려내는 것처럼, 응급실의 의사도 문진과 이학적 검사를 통해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의심되는 병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에 따라 검사를 진행하여 감별한다. 형사와 탐정이 손쉽게 범인을 찾을 때도 있지만, 처음 예측과 달리 온갖 난관에 부딪혀 천신만고 끝에 의외의 인물을 범인으로 밝혀내는 상황도 있는 것처럼 응급실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질환을 규명할 때도 있지만 계획을 몇 번이나 수정한 끝에 겨우 진단에 성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는 넓은 관점과 열린 태도, 함부로 단정짓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양한 각도에서 환자에 해당하는 질환을 추정하고 검사에서 얻은 결과가 추정과 다르면 언제든 유연하게 치료계획을 바꾸어야 하며 환자의 질환을 완전히 밝히기 전에는 함부로 'OO질환이 틀림없다'고 단정짓는 것을 피해야 한다.

물론 그런 자질은 의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문가에게 필요하다. 학계에서 권위자로 인정하고 여론이 주목하는 위치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특히 그런 '권위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할 수밖에 없는 사건을 마주한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2019년 끄트머리부터 지구촌 전체를 덮친 코로나19 대유행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하여 우리가 신뢰하던 서구 선진국이 대유행에 휩쓸려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확진자와 사망자의 최대치를 날마다 경신하던 작년에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s)를 이끄는 앤서니 파우치는 차분한 태도와 합리적인 의견으로 불안과 혼란을 잠재우는 것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그저 심한 감기에 불과하다', '마스크 따위 필요없다', '소독약을 주사하면 코로나19가 낫지 않나?' 같은 말로 군중을 선동했던 터이기에, 앤서니 파우치가 없었다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한층 심각한 상황을 마주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권위있는 전문가가 모두 앤서니 파우치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WHO)를 이끄는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대유행을 선언할 시기를 놓쳤고 그후에도 이른바 'G2'로 떠오른 중국의 눈치를 살피며 갈팡질팡하는 행보를 보였다. 심지어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바이러스학자 뤼크 몽타니에(Luc Mortagnier)는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여 '코로나19는 다국적 자본의 계략이다' 같은 음모론을 펼쳤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종교, 정치성향 같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사실을 조금씩 비튼 의견을 주장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찬양하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찬양하며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뜬금없이 신속항원검사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자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고 아예 백신 자체를 평가절하하며 '굳이 서둘러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물론 모든 전문가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합리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으며 주류의 주장과 다르다고 무조건 침묵을 강요할 수 없지만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의사의 입장에서도 씁쓸하게 다가오는 사례가 많다.

며칠 전, 정부가 청와대 방역기획관을 신설하고 다양한 매체에서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권위있는 전문가'를 임명했다. 방역기획관을 신설하는 것은 정부가 그만큼 코로나19 대유행을 막으려 노력한다는 뜻이니 환영할 일이고, 임명된 분에게 전문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권위있는 전문가’가 백신과 그 수급에 대하여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여 펼친 주장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사실을 비튼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다만 그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해도 크게 변하는 것이 없을 것이고, 지금 정국에선 소모적인 행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단순히 ‘권위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청와대 방역기획관으로 책임있는 자리에 오른 만큼, 그에 어울리는 판단과 헌신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 방역 현장 곳곳에서 과학의 논리에 따라 묵묵히, 철저히 일하는 전문가들의 낮은 목소리에 겸허히 귀기울이는 것부터 신경 쓰기를 바란다면, 이 역시 너무 앞선 생각일까?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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