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당뇨환자가 꼭 확인해야 하는 것
식품을 살 때 라벨에 쓰인 영양표시를 누구보다 열심히 봐야 하는 고혈압ㆍ당뇨병ㆍ고지혈증 환자들이 오히려 건강한 일반인보다 표시를 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오승원 교수팀은 2008∼2009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해 건강한 사람과 만성질환자의 식품 영양 표시 이용도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9일 밝혔다. 이 조사는 20세 이상 남녀 1만695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대한의학회지’ 11월호에 소개됐다.
논문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최고 혈압 140㎜Hg, 최저 혈압 90㎜Hg 이상)는 2758명 중 267명(12.2%)만이 식품 라벨에 쓰인 영양성분표를 확인했다. 고지혈증 환자(공복 혈중 총 콜레스테롤 240㎎/㎗ 이상)은 18.7%, 당뇨병 환자(공복 혈당 126㎎/㎗ 이상이거나 당뇨병 약을 복용 중이거나 인슐린 주사를 맞는)는 13.2%만 영양성분표를 챙겼다.
만성질환자 10명 중 8∼9명은 식품을 구입할 때 영양성분표라고 하는 소중하고 값비싼 정보를 회피한 셈이다.
이 연구에서 고혈압이 없는 사람은 27.8%, 고지혈증이 없는 사람은 25.1%, 당뇨병이 없는 사람은 25.4%가 영양성분을 살피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 여부와 상관없이 식품을 살 때 영양 성분을 읽는 비율이 전반적으로 낮았지만 영양 성분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만성질환자들의 외면이 특히 심각했다.
오 교수는 “일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층이 식품에 표시된 영양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만성 질환자들의 연령대가 건강한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만성 질환자의 영양표시 정보 이용률이 낮은 이유”라고 분석했다.
연구에서 전체 조사 대상자의 24.4%만 영양표시를 읽은 뒤 식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건강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선 식품표시를 읽는 비율이 무려 80%에 달해 우리와는 큰 대조를 보였다. 오 교수는 “식품의 영양 성분표에서 고혈압 환자는 나트륨, 당뇨병 환자는 당류ㆍ탄수화물ㆍ열량, 고지혈증 환자는 지방ㆍ포화지방ㆍ트랜스지방ㆍ콜레스테롤 함량을 반드시 확인하고 가급적 적게 든 식품을 살 것”을 당부했다.
그는 “식품의 영양표시는 건강한 사람보다 만성 질환자에게 훨씬 유용한 정보인데 이 귀한 정보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잘 관리하고 있는 환자들이 영양 표시를 더 자주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식습관에 관심 있는 만성 질환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질병을 잘 관리한다는 의미다.
오 교수는 “식품 영양표시가 건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려면 영양표시의 의미와 여기에 포함된 영양소가 질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영양 교육을 강화해 만성질환자가 영양표시를 잘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1993년 식품에 영양표시를 의무화하면 20년간 심장병과 암 사망자를 3만9200명 줄이고 1만2902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최근 미국에선 비타민 D(뼈 건강 유지ㆍ면역력 증강ㆍ암 예방)ㆍ칼륨(혈압 조절)ㆍ첨가당(비만 유발)에 대해서도 영양표시를 해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내에선 20년 전인 1994년에 식품 영양표시를 도입했다. 현재는 탄수화물ㆍ지방 등 9개 영양소에 대한 표시가 의무화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