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실 칼럼] 아라파트의 ‘암살자’는 방사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아라파트... 십수년 동안 신문기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단어들이다. 이 지역의 지난 역사를 꼼꼼하게 훑어 보면 일방적으로 한편만 들 수없는 복잡한 사정들이 얽혀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시민들의 참혹한 장면들을 볼 때면 과연 이런 장기적인 대립으로 이득을 보는 그룹은 누구일까라는 의혹도 든다.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이었던 고 야세르 아라파트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프랑스의 최고 명의들에게 진료를 받고도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보름 정도 앓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체중이 급격히 줄고 탈모가 심해지는 등의 증상을 보여 에이즈, 암, 백혈병 등이 의심되었으나 결국 모두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고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 입지로 볼 때 자연사보다는 암살이 의심되는 여러 정황이 있었으나 결정적 근거는 되지 못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객관적인 증거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였던 개인적 소지품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의 폴로늄이 검출되었다는 조사 결과이다. 결국 그의 시신을 발굴하여 뼈 샘플을 확보하고 이를 프랑스, 스위스, 러시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 조사단이 정밀 조사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폴로늄은 1898년 마리 퀴리-피에르 퀴리가 처음 발견한 물질이다. 그들은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새로이 발견한 물질에 자신들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폴로늄라는 이름을 붙였다. 몇 달 뒤 또 하나의 신물질을 발견하였으며 이는 라듐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들 물질을 발견한 공로로 마리 퀴리는 1911년 2번째 노벨상을 이번에는 화학상으로 수상하게 된다.
폴로늄은 우라늄 광석에서 발견되는, 희귀하고도 화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원소이다. 같은 이름 아래 모두 33가지의 동위원소가 있는데 모두 방사선을 내는, 방사성 동위원소이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이용되는 동위원소가 원자량 210번의 동위원소, 210Po이다. 반감기가 138일이며 순수하게 알파선만 방출하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알파선을 방출하고 난 후 궁극적으로 화학적으로 안정한 납으로 변화된다.
잠깐, 중학교 때 배웠던 과학 실력을 되살려 보자. 방사성 동위원소는 불안정한 물질로서 원자핵 붕괴라는 과정을 반복해 가면서 점차 안정된 원소로 변해가는 성질이 있다. 이 원자핵 붕괴 과정에서 방사선이 방출되는데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세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알파 붕괴, 둘째 베타 붕괴, 셋째 감마 붕괴이다. 알파 붕괴에서 방출되는 알파선은 양자 2개, 중성자 2개가 뭉쳐있는 입자로 형성되어 있는 방사선인데 진행 거리가 매우 짧다.
베타 붕괴에서 나오는 베타선은 전자들만이 뭉쳐있는 전자선이다. 전자의 에너지에 따라 다양하기는 해도 전자선 역시 진행 거리가 매우 짧다. 알파, 베타 붕괴의 산물이 입자들의 덩어리였다면 이에 반해 감마 붕괴는 전기장, 자기장의 성질을 다 갖추고 있는 전자기파이다. 진행 거리도 길며 뢴트겐이 발견한 엑스 선과 거의 모든 성질을 공유한다.
폴로늄에서 방출되는 방사선도 알파선이라 진행거리가 짧다. 따라서 방사능 오염이 알파선 방출로 인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그 부위에 방사선 검출기를 바짝 갖다 대지 않는 한 쉽게 찾아 내기 어렵다.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폴로늄에 오염된 물질을 섭취했더라도 주변 사람에게는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다. 반면 원자핵 붕괴의 또 다른 산물인 감마선은 투과력이 매우 뛰어나 감마선 오염은 탐지하기 쉽다. 반면 감마선을 방출하는 동위원소에 오염된 사람이나 물질, 장소에 있으면 역시 방사선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제 와서 아라파트의 사인을 폴로늄으로 의심하게 된 계기가 자못 궁금하다. 더구나 반감기 138일은 동위원소들 중에서는 짧은 기간이다. 이 시간을 주기로 방사능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때문에 아라파트가 8년 전인 2004년에 폴로늄을 섭취했더라도 지금 단서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