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AI…옮으면 어쩌나”
고병원성 판명… 전문가 “인체감염 잘 안돼”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어린이와 학부모 50여만 명이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았다. 어린이대공원은 이날 관람객 150여 명이 비단구렁이, 새끼 사자, 호랑이뿐만
아니라 조류인 앵무새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는 공식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광진구청 청사 내 자연학습장에서 서울에선 처음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어린이대공원은 광진구청과 불과 1.4km 떨어져 있다.
인근에서 AI가 발생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대공원에서 조류를 관람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입장객들은 서울시와 광진구청이 늑장 대처해 AI 위험 지역에 다녀온
셈이 됐다며 찜찜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내 한복판까지 AI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감염 위험은?
현재 AI가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서울 광진구청에서 발병한 AI 역시 6일
밤 고병원성으로 확진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여전히 유전자 분석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어 ‘변종 바이러스’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공원을 찾았던 사람들은 조류나 다른 동물들을 구경하며 무의식중에
AI 바이러스에 노출됐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AI에 감염된 동물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AI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상태로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원을 찾았던 사람들은 안심해도 된다.
서울대 수의대 김재홍 교수는 “AI는 사람에게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 AI에 감염된
동물과 매일 뒹굴다시피 해야 감염될 위험이 있고, 그런 사람 중에서도 감염은 어쩌다
한 명 있을까 말까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AI 초기증상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AI바이러스는 새에서 사람에게 옮겨가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정두련 교수는 “AI가 새에서 사람에게
옮을 확률은 굉장히 낮다고 볼 수 있다. 만에 하나 감염되더라도 크게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9명이 AI에 감염됐지만, 관찰한 결과 이들
모두에게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AI감염 의심환자로
격리치료를 받던 육군 조 상병도 당시의 폐렴 증상이 사라진 이후 격리를 해제해
치료중이며, 배양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AI 잠복기는 3~5일이다. 전문가들은 AI 바이러스에 노출됐던 사람 중에서
섭씨 38도 이상의 열이 나고 기침과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정 교수는 “AI에 감염되면 독감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면서
“코나 목 뒤쪽에 면봉을 넣어 검출한 검체를 분석하면 1, 2일 이내에 AI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관련 행동요령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지난달 23일 "최근 방역작업을 하던 군인에게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돼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면서 주의사항을 발표했다. 다음은
평소에 실천하면 AI예방에 도움이 되는 AI 관련 행동요령이다.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지 않는다.
△손을 자주, 올바르게, 깨끗이 씻는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한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의 밀접한 접촉을 피한다.
△AI 발생 농장의 종사자는 항바이러스제제를 복용한다.
△기침, 재채기를 할 때에는 휴지로 입과 코를 가리고 한다.
△열, 근육통, 기침, 인후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진료를 받는다.
▽AI 서울 발생 경과
서울시는 자양동 광진구청 청사 내 자연학습장에서 기르던 닭 2마리가 AI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6일 공식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성남 모란시장에서 사온 지 나흘이
지난 꿩 2마리가 광진구청 내 자연학습장에서 죽은 뒤인 지난 1일 칠면조, 2일 금계,
3일 닭이 잇따라 폐사했지만 3일에서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AI검역을 의뢰했다.
죽은 닭은 5일 오후 9시 10분쯤 AI감염 사실이 확인됐고, 6일 오후 10시 10분쯤 고병원성인
것으로 확진됐다.
서울시는 발표 후 예방 차원에서 어린이대공원에서 가금류 10종 63마리, 과천의
서울대공원에서 가금류 17종 221마리를 각각 살처분했고, 이들 동물원의 나머지 가금류에
대해서는 소독과 출입통제 등 방역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구청 공무원과 민원인 등 불특정 다수가 AI에 감염된 가금류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광진구 지역에서 임시반상회를 열어 접촉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접촉 의심자에 대해서는 혈청검사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닭이나 오리에게서 고병원성 AI 감염여부가 확인되면 반경 3km
이내의 모든 닭과 오리를 살처분해야 한다. 닭이 AI에 감염되면 시름시름 앓거나
죽는 등 증상이 즉각 나타나지만 오리와 철새는 감염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무증상
감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둘기처럼 우리에 갇혀 있지 않은 새들에게도 AI는 존재한다. 비둘기를 모두
살처분하는 것은 어렵다. 서울시내에 날아다니는 10만~20만 마리의 비둘기들이 사람에게
AI를 전염시킨다면 대량감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비둘기에 의한 AI감염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된 바 없다.
김재홍 교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정도의 AI바이러스에 감염된 비둘기라면
제 스스로도 이미 날지도 못하고 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AI감염 외국 사례
1997년 홍콩에서는 AI에 감염돼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8명이 AI에 감염됐고,
이중에서 6명이 심한 호흡기 증상과 함께 발열, 구토, 설사, 오한 등을 일으켜 폐렴으로
사망했다. 감염 환자들은 모두 홍콩지역의 조류 판매업소와 양계장에서 직접적으로
조류와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두련 교수는 “당시 동남아시아에서는 집에서 닭이나 오리를 직접 키우면서
AI에 감염된 동물의 배설물을 만지는 일이 많았다. 매일같이 AI에 감염된 동물을
만지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서 AI발병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