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건희 회장 기부금, 소아 백혈병 환자에 CAR-T 무상 치료

서울대병원, 내년부터 타 병원에 자체 생산 CAR-T 공급

서울대병원이 값비싼 CAR-T 치료제를 직접 생산해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넓힌다. 내년부터 무상으로 다른 국내 병원에 공급할 계획이다. 사진은 서울대병원 자체 생산 CAR-T 환자 치료 사례. [사진=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이 내년부터 국내 주요 병원과 협력해 조혈모세포이식이 필요한 소아청소년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에게 'CAR-T' 치료제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 남긴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의 기부금을 통해 자체 생산한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를 무상으로 제조·공급한다고 29일 밝혔다.이를 통해 환자들은 기존 병원에서 치료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CAR-T 치료는 암 항원을 잘 인지하는 B세포 수용체를 T세포에 유전공학적으로 삽입해 만든 것이다. 즉 환자 혈액의 T세포에 암세포를 인식하는 수용체를 주입해 대량으로 증식한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해 암세포만을 공격하고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혁신적인 치료법이다.

서울대병원은 CAR-T 치료를 급성림프모구백혈병(ALL)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혈액암 중 하나인 ALL은 소아암 중 가장 흔한 형태로, 국내에서 매년 약 200명이 발생하고 있다. 기존의 항암치료로 생존율이 향상됐지만, 재발하거나 치료에 불응하는 환자들의 생존율은 여전히 10~30%로 낮은 상황이다. 이들은 조혈모세포이식이 중요한 치료 옵션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은 고용량 항암제 또는 전신 방사선치료 후 건강한 공여자의 조혈모세포를 투여하는 치료법으로, 기존 항암치료에 비해 성적이 좋다. 하지만 재발 위험이 높고 자체 독성으로 폐기능 저하, 영구 탈모, 영구 불임 등의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은 조혈모세포이식 대상 환자들에게 CAR-T 치료제를 자체 생산해 제공하고 있다. CAR-T 치료는 특히 재발성·불응성 ALL 환자에서 생존율을 약 60%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입증됐다.

대표적인 CAR-T 치료제로는 노바티스의 '킴리아'가 있는데, 기존 상업용 CAR-T 치료는 환자 혈액을 해외로 보내고 생산 후 다시 한국으로 가져와 치료하는 방식이다. 이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서울대병원은 자체 GMP(우수의약품제조인증) 생산시설을 활용해 CAR-T 치료제를 병원 내에서 직접 생산해 치료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기관 CAR-T 임상연구 모식도 [사진=서울대병원]
지난 2022년 4월 첫 환자에게 CAR-T를 성공적으로 투여하며 임상연구를 시작했고 기부금 지원이 시작된 올해 4월부터는 더 많은 환자에게 치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기부금으로 CAR-T 치료를 받은 8명의 환자 모두 백혈병이 완전히 치료됐으며, 특별한 합병증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서울대병원 측은 설명했다.

내년부터 서울대병원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주요 병원과 협력해 다기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약 50여 명의 환자에게 자체 생산 CAR-T 치료제를 공급해 치료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 소아암사업부장인 강형진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조혈모세포이식은 재발 위험이 아주 높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치료법이지만, 치료 성적이 아직 만족스럽지 않으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CAR-T 임상연구를 통해 조혈모세포이식 전에 CAR-T를 먼저 투여해 백혈병 세포를 완전히 없애고 이식을 진행함으로써 치료 성적을 높이거나, 가능하다면 이식을 대체해 환자들이 평생 큰 합병증 없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부금으로 많은 환자들이 CAR-T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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