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 좁아지다 실명까지...'원샷' 유전자약, 정말 효과 있을까
희귀 망막질환 관여 유전자만 300개..."환자별 특성 따라 치료 접근법 갈려"
"나의 병명은 퇴행성 희귀망막염, 터널시야입니다. 깜깜한 터널에서 밝은 출구를 바라볼 때처럼 나의 시야엔 늘 검은 테두리가 두껍게 존재합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2TV 주말드라마 ‘다리미 패밀리’에는 8억원에 달하는 비용 때문에 눈 수술을 주저하는 여성의 사연이 그려진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14세 때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희귀병을 진단 받고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주인공, 이 병 어떤 질환일까.
극 중에 나오는 퇴행성 희귀망막질환의 정식 명칭은 '망막색소변성증(유전성 망막 이영양증)'이다. 망막은 물체의 상이 맺히는 부분으로, 빛을 직접 받아들여 뇌에 전달하는 기관을 말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이러한 망막에 밀집한 시각세포와 망막색소상피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바뀌는 유전성 질환이다. 결국 빛 자극을 감지해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세포인 광수용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한다.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시각세포가 손상되기에 점차 시야가 좁아지다 시력을 잃게 된다.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야맹증이다. 눈에 이상이 없는 일반인은 어두운 곳에 가면 처음엔 잘 보이지 않다가도 몇 분 지나면 곧 적응해 주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는 정상적인 ‘암순응’ 기능이 망가지면서 야맹증이 더 심각해진다.
변석호 세브란스 안과병원 안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대개 3000명 중에 1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체내 단일 기관에 발생하는 유전병으로는 가장 다양한 유전자가 관여하는 질환"이라며 "원인 유전자별로 서로 너무 다른 임상적 양상들을 보인다. 야맹증, 시야협착, 시력저하, 광시증 등 증상을 발견하는 시기도 환자마다 차이가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빠르면 10대부터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지만, 나이가 들어 시력이 크게 떨어진 후에야 병을 알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병이 더 진행되기 전에 빨리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시야가 좁아지거나 어두운 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진단은 시야 검사를 비롯해 망막전위도검사(ERG)를 통해 광수용체 기능 저하 및 소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광간섭단층촬영(OCT)으로 광수용체층이 얇아진 것을 확인해야 한다. 또 희귀 유전병인 만큼 유전자 검사도 빼놓을 수 없다. 통상 유전성 망막질환은 300개 이상의 원인 유전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중 약 80개 유전자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마다 원인 유전자가 다르고, 유전자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질 수 있기에 정확한 유전자 진단이 필수로 꼽힌다.
근본적인 치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시각세포와 망막색소상피의 변성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기에, 살아있는 시각세포가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접근법도 갈린다. 현재 단순히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목적으로 비타민A 보충제 복용 등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효과를 보기가 어렵고 오히려 과량 복용이 병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치료법 없다고 실망은 금물..."유전자 검사 통한 원인 파악이 첫걸음"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처럼 망막색소변성증 환자의 시야를 번쩍 뜨이게 할 치료법은 없는 걸까?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의 경우 최근 유전자 치료법이 등장했다. 이 외에 줄기세포를 이용하거나 망막색소상피 이식술, 인공망막, 광유전학 치료 등은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를 위한 '원샷(1회 투여)' 유전자 치료제 '럭스터나(성분명 보레티진네파보벡)'는 시각회로에 필수적인 RPE65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눈이 보이지 않는 환자를 위한 치료 목적으로 국내 허가를 획득하고 올해부터 건강보험을 적용받고 있다.
고장 난 유전자가 있는 환자의 세포에 AAV(Adenoassociated virus, 아데노 관련 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정상 유전자를 넣어 고장 난 유전자를 대체하는 치료법이다. 지난 2월부터 치료제 한 병당 3억2580만원에 급여 등재가 이뤄지면서, 환자 1인당 부담금은 약 1050만원으로 책정됐다.
일단 추가 치료가 필요 없어 이론적으로는 영구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학계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다만, 특정 유전자 변이가 문제가 된 환자만을 겨냥한 치료법으로 대상 환자가 제한적이고, 이마저도 망막세포가 어느 정도 살아 있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치료는 정교한 수술이 필요하다. 대상이 되는 환자의 망막 아래 공간에 약물을 주입하면 RPE65 단백질을 코딩한 복사 유전자가 환자의 망막세포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새 유전자가 삽입된 망막세포는 정상적인 단백질을 합성하면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특히, 치료 직후부터 병의 진행이 멈추면서 시기능도 일부 개선돼 야맹증이 많이 사라지고 시야가 좀 더 넓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올해 10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럭스터나를 사용한 환자들의 치료 성과 평가 결과를 보면 다소 온도차가 났다. 유전자 치료를 진행한 환자 절반에서만 효과를 보고했기 때문. 약물 투여 후 임상평가(광감수성, 시력, 시야 개선 정도 등)를 진행했을 때 유전성망막질환 환자 4명 중 2명만이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확인된 것이다.
변석호 교수는 "이러한 결과는 유전자 치료의 복잡성과 환자 개인별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치료 연령이 높을수록 결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치료를 받은 국내 환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연령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한 환자는 30세가 넘어 연령이 높은 편에 속했지만, 상대적으로 뚜렷한 시기능 회복을 보여서 연령 이외에도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망막질환 유전자 치료에서는 바이러스의 면역반응을 놓고 일부 안전성 이슈가 나온다"며 "치료 전에 이미 약물 전달체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데, 바이러스 전달체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의 장기적 안전성과 효과를 지속하기 위한 연구들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유전성 망막질환 환자들은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고, 실질적인 치료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뒤 병원에 잘 내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유전성 망막질환자 규모나 어떤 유전자에 이상이 많은지 등 명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유전자 검사는 본인이 치료 대상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보탬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며 "금연과 자외선 차단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고, 정기적인 안과 검진과 유전자 검사를 통한 정확한 진단, 최신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