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측만증, 자세 나쁘다고 생기지 않는다. 다만…”
척추 변형 명의(名醫), 해운대부민병원 이종서 의무원장에 들어보니
#1. 예원이(14)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밝고 활기찬 소녀다. 하지만 최근 등과 허리선이 틀어지면서 곧고 쭉 뻗은 발레 동작은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허리가 휘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젠 발레를 포기해야 하나” 우울해하고 있다.
#2. 수능 준비하는 진서(17)는 요즘 성적이 곤두박질친다. 밤낮없이 공부해도 집중이 잘 되질 않고,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다. 병원에 가보니 ‘척추측만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능이 코앞인데 요즘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척추 측만증(脊椎 側彎症, scoliosis). 척추가 똑바르지 못하고 휘어졌다. 그것도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만 휘어 있는 것이 아니라, 3차원적으로 꼬여 있는 회전 변형의 일종. 척추가 3차원적으로 10도 이상 좌우로 비틀리면 척추 주변의 근육과 인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척추 측만증의 발생 빈도는 어느 국가,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거의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코스 각도(Cobb's angle) 10도 이상의 척추 측만증은 전체 인구의 1~3%(평균 2%) 정도다.
문제는 그게 청소년기에 가장 많이 생긴다는 것. 특히 10세에서 골격 성장이 멈출 때까지다. 2021년의 경우, 척추 측만증(M41)으로 치료받은 환자(9만4,845명) 중 10대 청소년이 41.6%로 가장 많았다.
아이들은 뼈가 빠르게 성장한다. 특히, 여자아이들 초경이 빨라지는 등 성조숙증까지 더해지면 성장 속도는 더 가파르다. 역설적으로 이때가 척추엔 위험한 시기다. 즉, 성장이 빠른 시기에 측만증이 발생하기 쉽고, 발생한 측만증이 악화할 위험성도 크다.
해운대부민병원 이종서 의무원장은 30여 년간 척추 질환을 주로 고쳐온, 이 분야 대표적인 명의(名醫) 중 한 명이다. 지난 2002년 삼성서울병원 교수 시절, 국내 최초로 흉강경을 이용한 척추 측만증 수술에 성공, 우리나라 측만증 수술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주역이기도 하다.
- 자세가 나쁘면, 또 책상 의자가 안 맞으면, 아이들 허리가 휜다고들 하던데…
"척추측만증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 중 가장 큰 오해가 바로 그거다. 아이들 체형에 맞지 않는 책상과 의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측만증이 생기진 않는다. 다만, 허리 통증이 생기는 빈도는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자세가 나쁘다고 측만증이 생기지도 않는다. 자세 때문에 생기는 측만증은 자세를 바로잡으면 바로 정상으로 돌아가는 '가짜' 측만증이다."
- 만일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구조성' 측만증, 그중에서도 ‘특발성' 측만증 비중이 가장 크다. 특별한 이유 없이 척추가 휘는 경우다. 전체 환자의 85~90% 정도가 ‘특발성’이다. 그중에서도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경우가 80% 정도. 사춘기 들어가는 10세 이후부터가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된다. 특히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5~8배 정도 많다.
아직 구체적인 이유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여러 연구를 통해 직계가족 중 한 명에 측만증이 있는 경우, 발병 우려가 더 커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유전적 소인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들 보고 있다."
- 병원에선 척추측만증, 어떻게 진단하는가?
"대표적인 진찰 검사는 몸을 앞으로 90도 정도 숙이게 해 등과 허리의 대칭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다. 등이나 허리 한쪽이 튀어나와 양쪽이 서로 비대칭이면 일단 측만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아이 뒤쪽에서 어깨높이, 허리선, 어깨뼈 위치 등을 확인한다.
이어 척추의 휘어진 정도, 척추뼈의 회전, 척추 측만증의 유형 등을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X-ray) 촬영을 한다. 또 3차원 척추측만증 분석을 통해 척추 변형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 집에서 부모들은 바로 알아차리기 힘든가?
"집에서도 눈여겨보면 찾아낼 수 있다. ▲양쪽 어깨높이가 다른지 ▲신발의 양쪽 뒷굽이 다르게 닳는지 ▲몸을 90도로 굽혔을 때 한쪽 등이 삐뚤어져 있거나 돌출되어 있는지 등을 보면 된다. 또한, 자세히 보면 허리선이 비대칭, 즉 허리선이 휘어져 있거나 한쪽 골반이 더 높아 보인다.
아이를 마주 보았을 때 몸통이 비틀려 보이거나 옆에서 볼 때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보이기도 한다. 등을 만져보면 등에 혹처럼 돌출된 부분이 만져질 때도 있다."
-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아이들 너무 바빠서 사실 부모도 제대로 챙겨보기 어렵다.
"청소년기 척추측만증은 조기에 발견할 때 치료 예후가 가장 좋다. 하지만 부주의 탓에 내버려 두면 치료 시기를 놓칠 수가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또 성장기와 맞물릴수록 그 진행 속도가 더 빠르다. 더구나 50도 이상의 만곡은 나중에 성장기가 끝난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다."
-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
"다시 얘기하지만 조기 진단이 정말 중요하다. 치료는 척추의 휘어진 정도, 성장 속도, 환자의 나이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만곡 정도가 25도 전후일 때면 보조기 착용, 운동치료 등 보존적 치료 위주로 한다.
하지만 40도 이상이라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성장이 끝난 후인데도 50도 이상 만곡이 있을 땐, 특히 굽은 척추뼈가 가슴을 압박해 숨이 차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는 정도가 심할 땐 수술이 필요하다."
- 삼성서울병원 계실 때부터 척추변형 수술을 참 많이 하셨다. 특히 흉강경 수술은 우리나라 선구자다.
"가슴 앞쪽에 작은 구명 몇 개 뚫고 흉강경이라는 특수한 기구를 삽입하여 폐와 심장 사이의 공간을 직접 보면서 수술한다. 최소침습(最小浸濕) 개념을 적용한 수술법이다. 기존의 절개 수술보다 흉터가 확연히 작고 회복은 빠르다. 교정 효과가 크고, 뼈의 고정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주 심한 측만증이나 견고한 만곡 등에는 적용하기 어렵고, 수술 시간이 오래 걸리며, 방사선 피폭이 많다는 몇 가지 한계점도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등 쪽으로 들어가는 후방(後方)수술법이 크게 개선되면서 흉강경 수술의 장점을 많이 상쇄할 수 있게 됐다. 이에 가슴으로 들어가는 흉강경 수술은 요즘 거의 하지 않는 추세다."
한편, 이종서 원장은 척추측만증 외에도 척추후만증, 척추종양 등 다양한 척추변형에 대한 수술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복잡한 척추 변형 질환에 최적의 계획을 수립하고 성공적인 수술 결과를 얻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성장기 청소년들에 많이 생기는 척추 질환은 측만증 외에도 목이 1자가 되어버린 '거북목 증후군'(forward head posture), 등이 구부정한 채로 굳은 '척추 후만증(後彎症, kyphosis)' 등 다양하다”라면서 “측만증도 그렇지만 척추 변형 질환은 한번 생기면 완치(完治)되는 질환이 아닌 만큼 부모님과 학교, 학생들 모두 정기검진 등 평소 예방에 힘쓰고, 치료 받은 후에도 꾸준한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