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하려 해도...준비 안된 의료기관이 막는다?
“요양병원·병원 윤리위원회 설치 태부족...연명의료 지속 불가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환자가 늘고 있지만 의료기관들이 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해 환자들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환자 사망이 상대적으로 많은 요양병원들이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해 취약한 구조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문서로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힌 환자는 2019년 4만8238명에서 2020년 5만4942명으로 늘었고, 이후에도 2021년 5만7511명, 2022년 6만3921명, 지난해 7만720명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증가율로는 4년 간 46.6%(2만2482명) 수준이다.
반면 연명의료 중단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를 설치한 의료기관만 연명의료 중단을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이행할 수 있는데. 미설치 의료기관이 많은 탓이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연명의료 업무를 담당하는 윤리위를 설치한 의료기관은 총 444곳이다. 상급종합병원들은 모두 설치했지만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병원은 각각 전체의 62%, 11%, 3%만 윤리위를 두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환자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의사가 판단할 때 환자의 의향을 존중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다.
연명의료 중단 절차를 보면, 먼저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했을 때에는 윤리위가 설치돼 있는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계획서로 치료 중단 의사를 밝힐 수 있다.
고든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현재 윤리위원회 설치 수준은 2017년 대비 약 88% 증가했지만, 정부가 지난해까지 800개 기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한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요양병원들의 윤리위 설치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요양병원이 차지하는 사망자 비율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의료기관 사망자의 34%는 요양병원에서, 23%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각각 나왔다.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더 많이 있지만, 이들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연명치료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요양병원과 병원의 윤리위 설치 비율이 낮은 것은 상대적으로 영세한 탓으로 풀이된다. 윤리위는 의료인 외에도 법조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서 추천받은 사람 2명을 포함해 5명으로 꾸려야 하는데, 규모가 작은 곳은 그럴 만한 형편이 안되는 것이다.
고든솔 연구위원은 “윤리위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의료기관에서는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 관련 의사를 밝혀 두더라도 보장받을 수 없다”며 “사망자가 있는 의료기관의 윤리위원회 설치는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료기관 사망자 규모 등을 살펴 의료기관 특성에 맞는 목표를 재설정하고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