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거점 의대, 포스텍 의대 설립 ‘점화’
[박효순의 건강직설]
일출의 명소,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에 가면 초대형 가마솥이 있다. 2004년 1월 1일 해맞이 축제 관광객들에게 떡국을 끓여줄 목적으로 만든,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의 가마솥이다. 스테인리스와 주철을 적절히 혼합한 이 가마솥은 상단 지름이 3m가 넘고 둘레가 10m를 능가하는데, 지금까지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포항의 명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가마솥은 충북 괴산시에 있다. 2003년 ‘군민 화합’ 취지로 시작된 이 가마솥은 40톤이 넘는 주철을 사용해 전통 무쇠솥을 만들고자 했으나 여러 차례 거푸집이 터지는 등 실패 끝에 2005년 7월 완성했다. 무려 6m에 가까운 상단 지름, 둘레는 약 18m다. 하지만 이 기념비적인 가마솥은 우여곡절 끝에 2008년부터 사용이 중단되고, 현재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고 전해진다.
지난 2일 서울 시청 근처의 한 행사장에서 경상북도·포항시 기관장, 의회 의장, 지역 국회의원 등 주요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찾는 포항 미래 발전 포럼’이 열렸다. 표면적으로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표방하며 지역의 숙원사업인 의대 신설에 대한 메시지를 대거 쏟아냈다. 행사장에는 ‘지역의료 격차 해소, 지역 거점 의대 신설이 정답’ 현수막이 내걸렸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포스텍(포항공대)이 위치한 포항시엔 현재 의과대학, 대학병원이 하나도 없다. 이 때문에 포항시에서 응급·중증 환자가 발생하면 인근 도시의 동국대 경주병원, 울산대병원 등으로 이송해야 하는 실정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전국 47곳에 있지만 포항뿐 아니라 경북 전체에는 1곳도 없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지난해 12월 기준)는 서울이 3.61명으로 가장 많은데 경북은 1.41명으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16위다. 2020년 골든타임을 놓친 중증 외상 환자의 54.4%가 사망했고, 생존자 중 63%는 장애를 떠안았다.
이날 발표에 나선 김철홍 포스텍(포항공대) 융합대학원 의과학전공 교수는 "포스텍에 연구 중심의 의과대학을 새로 설립해 주면 과학을 하는 의사(의사과학자), 의학을 이해하는 공학자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포스텍이 가진 과학·공학 연구 노하우에 의학을 접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선 연간 의대 및 의전원 졸업생 가운데 단 1%만 의사과학자 진로를 선택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항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초격차의 경쟁력과 우위를 점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국가적 문제로 떠오른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포항 중심의 지방시대를 견인할 ‘포스텍 의과대학’ 신설에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한 포항시의 가마솥과 괴산군의 가마솥의 엇갈리는 명암은 같은 일을 추진해도 디테일(세심함·섬세함)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은 세계적인 철강기업 포스코와 함께 ‘영원한 철인’ 박태준 회장의 드높은 도전 정신과 리더십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지역 거점 의대 설립을 추진하며 ‘의사과학자’ 양성을 화두로 던진 것은 시의적절하다.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본다. 다만 지역 거점 의대를 나온 인재들이 그 지역에 남아서 진료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프레임과 디테일을 확실히 해야 한다. 포항시 가마솥 탄생 20주년을 맞아 ‘포스텍 의대 설립’이라는 ‘지역 숙원의 밥’이 잘 지어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