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선 의대 3명 추가 교육에도 영향평가…우린 준비 됐나?”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인터뷰

“과거 캐나다 한 의대에 임상 (실습)교육을 위해 3명 정도 추가 교육을 부탁했다. 그런데 해당 대학 부학장이 당장 결정하기는 힘들다 했다. 영향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3명을 추가하는 것이 현재 학생들의 임상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파악한 뒤 결정을 내리겠다는 설명이었다. 3명 단기간 추가 교육에도 여러 변수를 고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말하는 증원의 수는 무려 2000명이다. 우리 교육시스템, 준비가 돼 있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7년동안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 원장을 맡았던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는 당장 내년 의대 교육현장을 떠올리면 답답하다. 교육부는 개강을 강행하겠다고 했지만, 예과 1학년들의 수업 거부가 확산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25년에는 현재 정원과 증원학생, 유급생 등 총 8000명이 넘는 인원이 현재 의료교육 인프라 속에서 6년간 함께 교육 받고, 인턴과 전공의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 한국의학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국내 의학교육계를 이끌어온 대표 인사인 안 교수. 그는 최근 몇 개월 동안 계속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현재 의대 교육 시스템이 당장 새로운 2000명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수없이 던져진 물음표 중에 답을 찾아 돌아온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는 “2010년대 들어서야 의대교육 평가가 이뤄지면서 상황이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 의대 교육은 여전히 후진적 문제점을 많이 안고 있다. 의대 졸업하면 바로 의사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로서 갖춰야할 보편적이고 기본적 역량을 위한 현장 교육 경험이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모자란다. 인문학적 교양 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선진 의학교육 발전을 위해 추가 지원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기존 시스템도 감당못할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교육 발전이 뒤로가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학생들이 받아야 할 교육의 질이 지금보다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2010년대에야 자리잡은 의대교육평가… “부실한 교육의 피해는 사회로”

국내에서 의과대학 평가제도가 안착된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의과대학 평가제도 논의가 본격화된 것도 1990년대 들어서다. 2003년에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정식 출범한다. 의평원은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에서 조직된 단체지만, 전문성을 인정받으면서 성공적으로 공적제도권에 안착한 대표적 사례다.

2012년 2월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일부 개정을 통해 2017년 이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을 받지 못한 의과대학 졸업생들은 국가 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결정했다. 이후 2016년 6월 교육부가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를 개정해 모든 의과대학의 평가인증을 의무화했다. 같은해 9월 의평원은 세계의학교육연합회(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 WFME)로부터 전 세계 4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국제적 의과대학 평가인증기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의평원이 존재감을 드러낸 대표적 사안은 2018년 서남대 의대 폐교 사건이다. 서남대는 2013년 의평원 인증평가에서 ‘불인증’을 받고, 이어 2016년 추가적인 평가에서도 불인증을 받으면서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안 교수는 “당시 평가를 위해 찾은 서남대 교육 현장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에 있는 의과대학인가 싶은 정도로 교육 수준이 처참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정치적 이익에 따라 마구잡이로 의대를 짓게되면 이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부실한 교육의 피해는 사회가 입게된다”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증원이 이렇게 급하게 이뤄져야 할 이유를 지금은 찾기 힘들다. 교육현장이 이를 받아들일 환경이나 자원이 어느정도 갖춰져있는 지를 검증하는 게 우선이 돼야하지 않나? 선후가 분명히 바꿨다고 본다”고 짚었다.

의평원의 ‘의과대학교육 현황 파악을 위한 연구’를 보면, 2021년 전국 40개 의대 중 4곳은 기초의학 교수를 인증기준인 25명 미만으로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임상의학 분야도 2곳이 인증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어깨너머’ 교육 익숙한 의대생… 현장의 ‘의미’를 가르쳐야 

우리나라 의대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안 교수는 무엇보다 의대에서 현장 교육 강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의대 졸업 뒤 바로 의료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현장에서 역량을 기를 기회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캐나다와 미국, 유럽 등에서 의과대학생은 예비의사로 간주한다. 면허기관에 등록도 한다. 환자의 병력 수집 등 진료와 관련된 활동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배운다. 반면 국내 대학에서는 아직 ‘어깨너머’ 교육이 주로 이뤄진다. 환자들은 물론 다른 의료진과 활발한 의사소통도 드물다. 인턴과 전공의 교육 역시 처우 등 많은 문제가 축적됐다. 지금은 이런 시스템 자체를 고쳐서 어떻게 하면 역량 있는 의사를 길러낼지 고민해야 하는 게 우선 아닐까? 이런 시스템 개선 없이 학생 수만 늘리면 어떤 상황이 되겠나?”

2000명 증원으로 의정갈등이 촉발되기 전에는 의대교육에 있어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적 소통 기술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참이었다. 의사가 진료현장에서 환자와 원활한 의사소통은 물론 국가 보건의료시스템 변화를 이끄는 주체자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안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의대에서도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인문학 교육에 엄청난 투자들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의대증원에 기본적 기초의학 교육도 더 힘들어진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합리적 의대증원, 어떻게 결정?… “추계 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우선” 

의정갈등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최근 의료, 정치계는 물론 환자단체와 시민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안 교수는 일단 단기적으로 전공의단체가 요구한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구성하는 기구가 아니라, 민간의 전문가들이 대거로 투입돼 자료수집, 현황파악 등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보건의료인력 추계를 위한 전문적인 공공기구와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는 게 안 교수의 주장이다. 인구당 의사수 등 산술 계산으로 의사수를 늘리거나 줄였다가 그리스 등 많은 나라들처럼 실패를 맛보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각 나라마다 의료진료 시스템이나,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의 단순 비교하면 잘못된 해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정확한 현재의 의료 인력에 대한 파악조차 제대로 안되고 있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낼 수 있겠나? 예를 들어 의사 없는 지역이나 기피 전공과목으로 의사를 보내려면 그와 함께 가는 인력, 보수 교육, 당직 제도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추계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이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기피과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고 기피지역에도 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는 대도시 집중 문제와 공공병원 인력부족 문제로 의사를 늘렸다. 2019년 기준 그리스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6.31명이지만, 앞서 언급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안 교수는 “보건의료시스템뿐만 아니라 전문적 데이터, 검증, 평가, 교육 등이 필요한 전문영역에서는 다양한 민간전문기구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북미에서는 수많은 민간 전문가기구들이 투명한 운영으로 권위와 영향력,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기관들이 제대로 육성될 경우 전문가 직역의 교육, 육성 등 여러 분야 정책을 결정에 사용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들도 충분히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능력있는 검증기구들이 내놓은 정보가 합리적 토론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 의대증원 등 복잡한 사회문제 속에서 던져지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답을 안고 돌아올 확률은 훨씬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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