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부학회에 부부 회원이 탄생하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 21: Jeong NY, Lee JS, Yoo KS, Oh S, Choe E, Lee HJ, Park BS, Choi YH, Yoo YH. Fatty acid synthase inhibitor cerulenin inhibits topoisomerase I catalytic activity and augments SN-38-induced apoptosis. Apoptosis. 2013;18:226-237.

■사람: 정나영(박사과정, 현 동아대 의대 해부학 교실)
■학문적 의의: FAS 억제제에 의한 세포사 유도 기작 연구

의학과 1학년 늦은 가을이었다. 나는 해부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모님께 뜻을 밝혔다. 환자 보는 임상 의사가 아닌 연구하는 교수가 되겠다는 내 뜻에 부모님은 몹시 당황하셨다.

아버지는 엄지발가락을 연신 움직이시며 오래 고민하셨다. 하지만 이내 “지도교수님께 뜻을 밝히라”고 격려해 주셨다.

1979년 가을, 고(故) 김진정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계시던 40대 후반의 교수님은 내가 해부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몸을 벌떡 일으켜 내 손을 잡으셨다. “25년 만에 니가 드디어 해부학 교실을 잇는구나!” 교수님은 감격하셨다.

매 학년 100명에 불과한 좁은 동네였던 부산대 의대에서 내 얘기는 아래위로 급히 퍼졌다. 내 진로는 모두에게 기정사실이 되었고, 나는 꿈을 바꿀 수도 없었다. 사실 졸업 때까지 별로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졸업 후 해부학 교실에 들어가서 곧바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 꿈을 실현하기에 적절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선배가 기초의학 교실을 떠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실상을 알고 고민하였으나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지 않았다. 나는 형편에 맞게 꿈을 수정하였다.

그런 후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리나라 기초의학 연구환경도 그동안 현저히 변하였다. 50세 언저리가 되었을 때, 나는 ‘학문 성취’라는 점에서는 보람을 찾은 해부학자가 되어있었다.

그 무렵 의학과 4학년생 제자 정나영이 내 방을 불쑥 찾았다. 정나영은 해부학에 남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재학 중 사귄 동급생 오빠와 함께 기초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미래의 남편이 생리학을, 자신이 해부학을 선택하기로 의견을 조율하였다고 말하였다.

1979년의 김진정 교수님 나이보다 몇 살쯤 더 먹었을 때 내게도 해부학을 지원하는 제자가 나타났다. 나도 내 지도교수님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대학원 재학 시절의 정나영과 남편 정준양. [사진=유영현 제공]

다들 ‘임상’ 하러 떠나고…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기초의학 전공자

의대 출신 교수 요원이 남았지만, 그들 앞에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 대학에는 의대 출신 기초의학 요원을 지원하는 제도를 갖추지 못하였다. 대학 동기들은 ‘전공의’ 대우를 받는데 그들에게는 ‘대학원생 연구보조원’이 받을 수 있는 지원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부부가 학비를 마련하며 살림도 꾸려야 하니 가정 경제의 어려움이 뻔하였다. 온갖 수단을 내어 학비를 지원하느라 지도교수인 나도 힘이 들었다.

정나영은 본 연구 논문을 포함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를 통과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과정 동안 고생하였지만, 교원 임용은 순탄하였다. 학위 취득을 한 바로 다음 달, 모교인 동아대 의대 해부학 교실에 특별채용 되었다.

2002년 해부학 교실 교원 한 사람이 이직한 뒤로 나는 우리 대학 졸업생이 남을 때까지는 그 자리를 충원하지 않고 비워 두었다. 십 년 넘게 비어 있던 해부학 교원 T/O가 정나영 교수 임용에 쓰였다.

정나영 교수 덕에 우리 졸업생을 교실에 남겼다는 뿌듯함을 간직한 채 홀가분하게 은퇴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정나영 교수보다 한 해 먼저 경희대 의대 해부학 교실에 발령을 받았다. 의대 출신 기초의학 교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 부부는 특별히 빛난다.

대한해부학회의 유일한 부부 교수 회원은 동아대 의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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