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처럼 반짝이는 삶을”…4명 살리고 떠난 26살 래영씨

보행 중 운전자 엑셀 밟아 교통사고...의식 잃고 한달 뇌사 상태

최근 뇌사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박래영(26) 씨.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최근 4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박래영(26) 씨는 봄날의 햇살 같은 아이였다. 어려운 이가 있으면 선뜻 먼저 다가갔고, 베푸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꾸준한 헌혈과 봉사활동을 해왔던 래영 씨의 밝은 미소와 마음은 주변마저 환하게 만들었다.

래영 씨의 어머니 이선숙 씨는 “우리 아이는 햇살같고 복숭아같은 그런 아이었어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웃음을 주고 그런 사람이라고 (만나는 사람)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라며 딸에 대한 추억을 돌아봤다.

1남 2녀 중 막내였던 래영 씨는 유난히 다정했다. 어렸을 때부터 손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가족들 생각이 날 때면 예쁜 편지지를 사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손편지를 써줬다. 아기자기한 스티커들로 장식한 편지들 속에는 언제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선숙 씨는 최근 서류 정리를 위해 방을 정리하다 발견한 예전 손편지들을 열어보고 다시 올라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나 하나 읽어내려가던 편지 속에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문구때문이다. “우리 가족 아무 사고 없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자.”

래영 씨가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것은 9월 18일이었다. 출근을 위해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보행신호로 바뀌었기에 아무 의심없이 건널목을 건너던 래영 씨는 갑자기 달려드는 자동차에 치였다. 운전자가 차에 떨어진 서류를 줍다가 실수로 브레이크 대신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탓이다. 당시 사고로 4명이 다쳤는데, 래영 씨를 제외한 3명은 간단한 찰과상만 입었다.

반면, 래영 씨는 병원 이송 당시부터 의식을 잃었다. 의료진에 따르면 사고현장에서 바로 목숨을 잃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가족들을 두고 쉽게 떠날 수 없어서였을까? 래영 씨는 뇌사 상태로 한달을 더 버텼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치료가 있었지만, 다가오는 이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가족들은 고민 끝에 뇌사자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심장과 간장, 양쪽 신장을 4명의 환자에게 전달해 새로운 삶을 전해줬다. 물론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다.

언니 박래옥 씨는 “(처음에는) 래영이를 더 아프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는데 결론적으론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 ‘래영이라면 했을 것 같다’라고 말해준 덕분이다. 남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아하고 무언가를 나눠주고 환하게 웃었던 래영씨를 기억하는 이들이 해준 말들은 결심에 도움을 줬다. 사고 뒤에 알았지만, 래영씨는 생전에 직장 동료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던 적도 있다.

어머니 선숙 씨는 딸의 장기를 기증받은 이들도 래영 씨의 빛났던 삶의 조각을 함께 받아가길 기원한다. 짧은 삶이었지만, 아이가 곳곳에 심었던 선한 영향력이 장기기증으로라도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래영이는 건강했거든요.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하고 모든 게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아이였거든요. (장기 기증을 받으신 분들도) 우리 래영이처럼 그렇게 남들을 생각하고 남들한테 행복을 주고 진짜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순수하고 밝던 래영 씨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는 선숙 씨. 그는 딸을 잃은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늘나라 편지(한국장기조직기증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다.

“너도 파랑새 엽서를 엄마한테 써주면서 파랑새처럼 행복하게 살라고 그랬잖아. 엄마도 파랑새처럼 살 테니까 너도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기증자 박래영 씨를 그리며 유족인 어머니와 언니가 마음의 편지를 전하는 영상(https://youtu.be/Tg6EaAVlgfA)은 유튜브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채널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한편, 문인성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생명나눔을 실천해 주신 기증자와 기증자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수는 173만7753명으로, 인구 대비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은 약 3%대에 머물러있다.

고(故) 박래영(26) 씨(왼쪽)가 그의 언니인 박래옥 씨와 과거 찍었던 사진. [사진=유튜브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채널]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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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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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n*** 2023-11-21 17:33:13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신 분이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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