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었던 말이 말을 거네… “승마, 90대에도 가능한 스포츠”

한국마사회, 실버힐링승마 시범사업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렛츠런파트 실내 승마장에서 실버힐링승마 교실에 참여한 회원들이 말을 타보고 있다. [사진=한국 마사회]
“승마는 살아있는 동물과 함께하는 유일한 스포츠에요. 그게 승마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렛츠런파크의 한 실내 승마장. 타바타박 두 마리의 흰색 말이 등 위에 학생들을 태우고 걷고 있다. 베테랑 말인 ‘듀크’와 ‘머피’는 평온하게 돌고 있었지만, 등 위에서 허리를 바짝 세운 학생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역력했다.

“몸을 앞으로 구부리시면 안돼요. 그럼 말은 빨리 달리자는 걸로 알아듣고 속도를 내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주시고, 앞을 보세요. 땅을 보면 안되구요. 다리는 뒤로, 숨을 쉬세요. 숨을 후후.”

“네네 다리 위치 체크하시구요.”

“고삐 너무 당겨졌어요. 조금 더 길게.”

말을 타는 학생 외에도 안전한 연습을 위해 동원되는 인원은 코치 2명과 자원봉사 3명 등 총 5명이나 된다. 처음으로 말을 타본 이들을 위해 코치 선생님의 깨알 지도도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바퀴 수가 늘면서 학생들의 긴장도 다소 풀어진 듯 했다. 얼핏 얼굴에는 신나는 표정마저 번졌다. 조심조심, 천천히, 느리게 진행되는 승마 배우기. 언뜻 들으면 어린 아이들을 위한 승마 교실 같지만, 말 위에 올라탄 회원들은 모두 60살을 훌쩍 넘으신 어르신들이다.

과천시노인복지관과 한국 마사회가 함께 마련한 실버힐링승마 프로그램 2기 학생들의 기승(말타기) 수업 모습이다. 실버힐링승마는 올해 처음 시작된 시범 사업이다. 올해 상반기 1기 교육을 마쳤으며, 2기 교육이 진행 중이다. 2기에도 1기와 마찬가지로 60살 이상의 어르신 12명이 참여했다.

재활·힐링승마는 말을 활용한 한국마사회의 대표 사회공헌 활동으로 2006년부터 진행됐다. 다만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올해가 처음이다. 마사회 측은 “이번에는 시범사업이지만, 향후 효과나 참가자들의 반응을 모니터링 하고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사실 이번 프로그램은 시범사업임에도 높은 경쟁률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힐링실버승마에 참여한 주미원(63)씨가 말타기 체험을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마사회]
외국에선 노인 스포츠로 주목…고령화 시대, 주목받는 승마

올해 97살인 영국 식물학자 마가렛 브래드쇼는 최근 말을 타고 88km 지역 횡단을 해내며 화제가 됐다. 5살 때부터 말을 타 온 브래드쇼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장수의 비결에 대해 “계속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승마는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귀족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나이 들어서까지 지속할 수 있는 운동 중 하나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승마는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노인들의 건강에 도움을 줄까? 일단 승마는 충격이 적으면서도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스포츠다. 말등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코어 근력, 근긴장도 및 전반적 체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나이가 들수록 점차 줄어드는 근육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은 필수다. 서울아산병원 노인내과 전문의인 정희원 교수는 65살 이상 노인들이 사망전 장기요양시설에서 지내는 시간을 계산하면, 노인의 근육 1kg의 가치는 최소 400만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신 코치는 “승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등 위에서 말의 움직임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다”라면서 “타는 사람이 긴장하지 않아야 말도 긴장하지 않는다”고 수업 중에 설명했다. 이어 “운동 전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말을 탈 때는 말의 움직임에 따라 몸도 저절도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동작을 하게 된다. 이런 움직임은 관절을 부드럽게 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관절염이나 뻣뻣함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특히 유리할 수 있다. 또한 말 위에서 몸을 지탱하는 과정에서 나이 들수록 약해지는 균형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경동대학교 재활의학과의 김은자 교수 등 연구팀은 ‘재활승마가 노인의 균형과 노인 삶의 질척도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노화에 따른 근골격계와 신경계의 퇴행성 변화로 낙상 위험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재활승마 운동은 매우 유용하다”고 평했다.

연구팀은 “말을 타는 동안 기계적 자극이 근골격계와 신경계 자극하여 근활성도를 증가시키며, 특히 말의 움직임에 따른 기승자의 체간 움직임은 전정계를 자극하여 균형 운동에 효과가 있고 말을 조정하는 동안 상지의 움직임과 등자의 하지 움직임으로 신체활동을 증가 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2021년 마가렛 브래드쇼 박사가 희귀식물보호를 위한 기금모금을 위한 챌린지에서 말을 타고 있다. 2022년 박사의 활동을 보도한 잉크캡 저널 (InkCap Journal ) 휍페이지 갈무리. [사진=잉크캡저널캡처]
살아있는 동물과 하는 유일한 스포츠…”새로운 경험은 긍정적 자극” 

승마는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주는 스포츠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스트레스 감소, 기분 개선, 우울증 및 불안 증상 감소 등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마 중 말과의 교감과 자연과의 교감은 심리적 웰빙에도 도움을 준다. 게다가 말을 타고 상호 작용하는 방법을 배우려면 집중력, 문제 해결, 기억력이 필요하며 이는 모두 인지 기능과 관련돼 있다. 치매 예방 등 노인들의 정신 능력을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실버힐링승마 시범 프로그램은 총 8회차로 이뤄진다. 말의 표정과 행동관찰, 손질, 끌기 등 서서히 사람과 말의 교감을 쌓아가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몽골을 여행 차 갔을 때 관광코스 중 하나로 말을 탔던 경험이 너무 좋아서 승마교실을 신청한 주미원(63살)씨는 사실 처음에는 말을 타는 기회가 생각보다 적다고 생각했지만, 말과 함께 하는 여러 활동들이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주 씨는 “처음엔 말 타는 것만 관심을 가지고 왔지만, 여러가지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한 것이 의외로 기억이 남아요. 관광지 가서 말은 타보겠지만, 내가 어디가서 말 손질을 해보겠어요. 예전에 관광 가서 말 타본 경험이 좋아서 신청하긴 했지만, 직접 먹이도 주고 말을 관리해보는 게 새로워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가장 즐거운 시간 중 하나로 ‘당근 주기’ 시간을 꼽았다. 주씨는 “처음엔 무서웠지만, 이제는 말한테 친숙하게 다가가 당근을 줄 수도 있다”면서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말에게 당근을 주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실제 기승이 끝난 뒤 그는 말 우리로 가 “나 태우느라 고생많았어”라며 다른 회원들과 함께 직접 사온 당근을 손바닥 위에 얹어 말에게 먹여주기도 했다.

실버 힐링승마 참여자들은 말과의 교감을 통한 정서적 안정은 물론 새로운 도전과 배움을 통해 자신감 또한 향상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신 코치는 “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처음에는 두려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말은 애교도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동물이다.”라면서 “(실버힐링승마에서는) 단순히 말을 타는 경험뿐만 아니라 말을 돌보는 활동도 있는데, 낯선 경험 자체가 좋은 자극제가 된다며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들수록 새로운 걸 만나기가 힘들다면서, 이런 흔치 않은 경험 자체가 좋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한편으로 어르신들은 새로운 걸 도전해서 해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상당히 뿌듯하게 느끼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승마는 그룹 레슨이나 승마 클럽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노인들에게는 귀중한 사회적 상호 작용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회적 참여는 더 나은 정신 건강은 치매 위험 감소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실제 실버힐링승마에 같은 반에 배정된 어르신들은 따로 모임을 만들어 함께 다른 활동을 하기도 한다.

과천시노인복지관의 박소희 사회복지사는 “(기존에 것과는 다른)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고 좋아해주시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다”면서 “1기는 물론이고 2기에도 경쟁률이 높았는데, 안전을 위해 건강 조건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는 이번 시범사업 운영 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면밀하게 효과를 체크하고, 고령층의 새로운 레저로서 승마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윤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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