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서도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논문15: Noh SJ, Jeong WJ, Rho JH, Shin DM, Ahn HB, Park WC, Rho SH, Soung YH, Kim TH, Park BS, Yoo YH. Sensitization of RPE cells by alphaB-crystallin siRNA to SAHA-induced stage 1 apoptosis through abolishing the association of alphaB-crystallin with HDAC1 in SC35 speckles. Invest Ophthalmol Vis Sci. 2008;49:4753-4759.
■정우진 신동민 안희배 박우찬 노세현(동아대 의대 안과 교수들)
■학문적 의의: aB-crystallin이 SC35 speckle에서 HDAC1과 접촉
안과 연구에 뛰어들고 10년 만에 ‘Investigative Ophthalmology and Visual Science’(IOVS)에 이 논문을 게재하는 기쁨을 얻었다.
인용지수가 지배하기 이전에는 IOVS가 시(視)과학 분야의 최고 연구잡지였다. 인용지수가 학계를 덮친 후 많은 시과학 연구자들도 점수가 한 점이라도 높은 다학제 잡지에 논문을 제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IOVS는 과거의 명성을 모두 다 누리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안과 및 시과학 분야의 대표 연구잡지라는 권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망막색소상피 세포사 연구에 뛰어들고 몇 년 내에 나는 관련 연구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기왕 안과 연구에 뛰어들었으니 IOVS에 논문을 게재하고 싶다는 희망이 자라났다.
IOVS 게재는 안과 교수님들 ‘희망 사항’이기도 했다
나는 모든 안과 연구 논문을 우선 IOVS에 먼저 제출하고 채택이 거부되면 다른 안과 잡지에 제출하기를 거듭하였다. 마침내 이 논문이 IOVS에 채택되었다. 안과교수님들도 환호하였다.
논문이 게재된 후 한껏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나는 연구의 수준을 계속 높여 나갔다.
따라서 연구 내용은 임상교수님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매우 깊은 세포분자생물학 연구로 변해갔다. 눈 연구는 더는 안과와의 기초 임상 공동연구가 아닌 나만의 기초연구로 변하여 버렸다.
당장 눈 질병의 기작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에는 너무 동떨어진 듯한 연구가 이어지자 안과 교수님들은 내 연구와 그들의 진료에서 괴리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더군다나 각막, 녹내장, 망막, 안(眼) 성형, 소아안과 등 각자의 세부분야와 관련한 연구는 충족되지 않았다.
나는 안과 교수님들의 희망을 알았지만, 마치 그들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망막색소상피세포를 이용한 연구에만 집중하였다. 당시 내 형편으로는, 이미 연구 방법이 정립된 망막색소상피 분야를 넘어 다른 주제 연구를 수행할 수 없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우리 대학에서 기초 임상 공동연구의 모범적인 예라는 평가를 받았던 나와 안과의 공동연구는 높은 곳에 오른 후 깊은 골로 점차 빠져 내려갔다.
이후로도 수년간 안과 연구는 진행되었으나 안과 교수님들이 세대교체 되면서 공동연구의 열기는 더욱 식어 갔다.
망막 세포사 연구의 생산적인 결과에만 도취해 다른 안과 교수님들의 희망을 만족하게 해 드리지 못한 내 불찰이 컸다. 우리는 15년 공동연구를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