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임질’ 치료하는 새 항생제 나올까?
‘졸리프로다신’ 3상 임상시험에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약효 입증
매년 세계적으로 약 1억 명의 사람이 임균에 감염돼 비뇨생식기에 염증이 생기는 임질에 걸린다. 임질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불임과 자궁외 임신을 유발할 수 있고 HIV 감염을 증가시킬 수 있다.
임질에 대한 표준치료법은 세프트리악손(ceftriaxone)이라는 항생제를 주사하고 아지트로마이신(azithromycin)이라는 알약을 함께 복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이들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슈퍼 임질’ 사례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런 슈퍼 임질을 표적으로 하는 획기적 항생제가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성공했다고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새로 개발된 항생제는 졸리플로다신(zoliflodacin)이다. 이 약 개발을 지원해온 스위스의 비영리단체인 ‘글로벌 항생제 연구개발 파트너십(GARDP)’은 임질 항생제 분야에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고 이날 발표했다.
졸리플로다신은 임균의 세포 복제 과정에서 DNA가 엉키는 것을 풀어주는 필수 박테리아 효소를 표적으로 삼은 항생제다. 다국적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처음 개발했다. 이후 개발권을 넘겨받고 지난해 미국 제약사 이노비바에 합병된 엔타시스 테라퓨틱스(Entasis Therapeutics)가 제조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HI)은 임질 환자 179명을 대상으로 한 이 항생제의 2상 임상시험에 자금을 지원해 2018년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후 이 약의 개발이 답보 상태에 머물자 GARDP이 3상 임상시험을 후원에 나섰다.
3상 임상시험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임질 환자 930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졸리플로다신 알약을 복용하거나 세프트리악손 1회 주사를 받고 아지트로마이신 알약을 복용했다.
세프트리악손이나 아지트로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로 인해 발생한 사례는 없었지만 졸리플로다신이 이들 약물만큼 감염 치료에 효과적인 점이 밝혀졌다고 GARDP의 매니카 발라세가람 전무이사는 밝혔다. 또한 졸리플로다신이 부작용 없이 안전하다는 것도 입증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스웨덴 외레브로대학병원의 매그너스 우네모 교수(미생물학)는 “세프트리악손 내성 임균이 전 세계에서 독립적으로 출현해 현재 일부 국가에서 널리 퍼지고 있으며, 일부는 아지트로마이신에 대한 내성까지 획득해 심각히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획기적 돌파구가 마련됐다”며 이번 임상시험 결과를 환영했다. 우네모 교수 연구진은 임균이 졸리플로다신에 대해서도 언젠가 내성을 지닐 수 있음을 실험실 연구로 입증했으나 아직은 환자의 샘플에서 내성 균주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졸리플로다신을 과용하거나 오용하는 경우(예: 박테리아 개체군을 전멸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투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발라세가람 전무는 “임질균은 지금까지 사용된 모든 종류의 약물에 대한 내성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졸리플로다신에 대한 임균의 내성을 막기 위해 이 약물은 임질 및 기타 성병(STI) 치료제로만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이 약을 사용할지는 규제기관과 공중보건기관에 달려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성병전문가인 테오도라 위 박사는 새로운 진단법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질을 다른 성병과 빠르게 구별할 수 있는 검사는 가까운 미래에 더 널리 보급될 것이지만, 약물 내성을 식별할 수 있는 검사는 아직 멀었다. 항생제 내성 임질에 대한 국가 감시 프로그램도 졸리플로다신의 책임감 있는 사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GARDP는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이 약을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으며 엔타시스는 나머지 지역에 대한 마케팅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발라세가람 전무는 약값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GARDP는 이미 인도의 한 제약회사와 제조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며, 대규모 생산이 이뤄지면 결국 졸리플로다신의 가격이 기존 치료제와 거의 같은 수준인 몇 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