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구한 논문, 나 빼고 저자로...배신 행위에 눈감았더니

[유영현의 의학 논문 속 사람 이야기]

이야기 배경이 된 미국 암연구회 2007년 LA 학회 초록집. [사진=유영현]
이 논문에는 사람 냄새가 유난히 풀풀 난다. 좋은 냄새도 나고 나쁜 냄새도 난다.

지도교수 해외 체류 중 나의 지도를 받았던 연구자는 열정을 가지고 자료를 얻어 내었다. 세포사 과정 중 한 효소가 세포막을 건드린 후 핵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입증하는 자료들을 얻어 낼 때마다 참여한 모든 연구자는 환호하였다. 실험을 마쳤을 때 자료들에 대한 내 희망이 한껏 부풀려졌다.

나는 ‘Nature Med’ 저널에 논문 요약을 내고 사전 심사를 받았다. 아쉽게도 자료가 아직 덜 성숙하였다는 의견으로 심사 거부 판정을 받았다. 논문이 거부될 때마다 연구자들은 실망한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다. 그래도 이 자료 덕에 한 명의 박사가 탄생하게 되는 점은 큰 기쁨이었다.

이후 스토리는 매우 불쾌하게 흘러간다

내 실험실에서 산출한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자신의 대학원으로 돌아간 학생은 나와의 상의도 없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학회에 초록을 제출하였다. 내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고 자료 산출에 이바지하지 않은 본인의 학위 지도교수가 ‘교신저자’로 되어 있었다. 연구윤리 위반이며 배신행위였다.

비자 만료를 염두에 두지 않고 샌디에이고 학회로 출발하였다가 공항에서 막혀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분노는 배가 되었다.

나는 전화로 지도교수에게 거칠게 항의하였다. 학생은 엄하게 꾸짖었다. 내가 문제로 삼았다면 둘 다 크게 징계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제하였다. 오랜 인연을 파국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LA 학회 현장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온화하게 대하니 그들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반전이 일어났다

LA 학회에서 서울의 한 대학교수가 내 포스터로 다가왔다. 그는 세포사와 미토콘드리아 관련 내 연구 논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가 관여하였던 연구기획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곧 미토콘드리아연구단 공모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을 알았다. 나는 세포사 맥락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연구하였으므로 그 연구단 지원에 적합하였다.

이 논문과 관련되어 그간 흘러갔던 이상한 상황이 내게 연구단 지원을 준비하라는 계시라는 해석을 하게 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었다. 귀국 후 즉시 연구진을 구성하고 도전에 나섰다.

그해 여름 동안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미토콘드리아연구단 유치에는 실패하였다. 실패하였지만 나는 실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 논문과 관련하여 연이어 일어났던 이상한 흐름에 대해 재해석하기 시작하였다.

우수연구센터 사업이 아른거렸다

나는 미토콘드리아연구단 유치를 위하여 구성하였던 연구진을 뼈대로, 다음 해 우수연구센터 사업 SRC 부문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SRC 사업에 도전을 준비하는 시점에 맞추어 이 논문이 간행되었다. SRC 지원 신청서에 나는 이 논문을 대표 논문의 하나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제안한 미토콘드리아 허브제어연구센터는 마침내 SRC 사업에서 선정되었다. 기초 의학 연구진으로는 받기 어려운 SRC 센터를 유치하였다. 희열을 느꼈다.

SRC 센터 유치는 내 연구 이력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이 센터 탄생 아래에는 열정, 환호, 기대, 실망, 기쁨, 배신, 분노, 해석, 용기, 실패, 재해석, 도전, 희열의 사람 이야기가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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