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낙태 검사법’, 여성 사생활 침해 논란이?

낙태 약물 검출로 낙태 여부 밝혀내는 것이 왜 필요할까

폴란드 법에 따르면 스스로 낙태약을 복용한 여성은 기소할 수 없지만 그 약을 구하도록 도움을 준 사람은 기소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폴란드에서 생물학적 샘플에서 낙태 약물을 검출하기 위해 개발 중인 낙태 검사법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적, 윤리적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과학전문지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수적 가톨릭국인 폴란드에서는 대다수의 낙태가 법으로 금지돼 있다. 따라서 사법당국이 여성의 낙태 여부를 감별해내게 되면 해당 여성을 범법자로 몰고갈 위험이 크며 또한 폴란드 여성들의 생식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폴란드 과학아카데미 생물유기화학연구소의 도미니카 세르원카 연구원과 아담 마키비츠대의 시몬 소브착 교수(화학)는 “임신 결과를 조사하기 위한 ‘낙태 검사’의 도입은 여성의 사생활과 생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과학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오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낙태는 10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뜨거운 논쟁 중 하나다. 폴란드의 현 정부는 미국처럼 낙태를 불법화해 2021년부터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 또는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낙태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폴란드 과학자들이 2022년 화학 분야의 국제학술지《분자(Molecules)》에 게재한 ‘낙태검사’와 관련한 2개의 논문을 소개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들 논문은 폴란드에서 3건의 낙태 의심 사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채취한 생물학적 샘플에서 낙태를 유도하거나 유산을 관리하기 위해 종종 함께 사용되는 약물인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과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이 검출됐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미페프리스톤 또는 미소프로스톨에 의해 낙태가 유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보도로 폴란드 사법당국이 이 검사법을 폴란드 여성들이 낙태했는지 아닌지에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들불처럼 확산됐다. 두 논문을 게재한 《분자(Molecules)》지의 편집부는 관련 불만이 접수돼 해당 논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네이처》는 전했다.

이들 논문의 주저자인 폴란드 브로츠와프의대의 파베우 스스팟 교수(독성학)는 과학적 동기로 이뤄진 연구를 정치적으로 몰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이와 관련한 실험과 연구를 공개적으로 해왔지만 이에 대해 반발하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이번 논문들 또한 동료검토를 거쳐 발표됐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NYT는 브로츠와프 지방 검찰청이 임신 결과를 조사하기 위해 해당 검사법을 사용했음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네이처》는 폴란드의 11개 지방 검찰청에 관련 문의를 했다. 4곳만 답을 했는데 1곳만 이를 요청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나머지 3곳은 이를 확인하거나 공유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폴란드 검찰청은 이러한 검사 의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폴란드 법에 따르면 스스로 낙태약을 복용한 여성은 기소할 수 없지만 그 약을 구하도록 도움을 준 사람은 기소될 수 있다. 낙태 검사법이 실제 적용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 폴란드 여성들이 낙태약을 복용한 뒤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고 폴란드 낙태 권리 단체인 ‘낙태 드림팀’측이 밝혔다.

스스팟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낙태 검사법은 생물학적 샘플의 화합물을 검출하고 정량화할 수 있는 기술인 탠덤 질량 분석법을 이용한다. 논문에 실린 한 사례는 온라인으로 구매한 낙태약을 집에서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22세 영성의 혈액샘플에서 미페프리스톤과 그 대사산물을 검출했다. 다른 두 사례에서는 태아 및 모체 조직 샘플에서 미소프로스톨의 대사산물인 미소프로스톨산을 검출했다.

탠덤 질량 분석법은 독성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법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러한 검사가 임신 결과를 결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선 대규모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 로잘린드 프랭클린 연구소의 질량 분석가인 펠리시아 그린 박사는 “이는 법의학 독성학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방법론“이라면서도 샘플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낙태 검사법을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세르원카 연구원과 소브착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일부 연구자는 이러한 검사를 사용하는 이유가 비윤리적이며 폴란드의 제한적인 낙태 정책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의 사라 로버츠 교수(역학)는 “제가 알기로는 미소프로스톨이나 미페프리스톤을 검사하기 위해 검사를 해야 할 정당한 의학적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인 젠 건터 박사도 “그걸 알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기소를 하기위한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스팟 교수는 자신의 업무가 사법당국의 요청에 따라 사망 또는 의학적 증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생물학적 물질에서 화합물을 검출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과학자이며 폴란드의 현행법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고 반박했다. 연구에 참여한 다른 과학자들은 “우리는 과학이 정치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정치적인 논쟁에 참여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하거나 논평 자체를 거부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이 일부 국가에서 불법 낙태에 사용되며 암시장에서 이러한 약물과 위조 낙태약의 가용성이 증가함에 따라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건터 박사는 이미 임상실험을 통해 해당 약물이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됐으며 폴란드 사법당국이 ‘낙태 검사법’을 쓰는 것이 더 위험한 형태의 낙태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약물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전성을 검증받았다”면서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과학적으로 유효한 낙태 검사법이 개발된다면 낙태가 더욱 지하화돼 더 위험한 방식의 낙태가 성행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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